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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 구경 못 하고 사요"

안마도 신기마을, 인기척 없는 어느 집 마당에 들어섰다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린다. “가지 마시오. 나는 사람 구경 못 하고 사요. 어서 들어오시오.” 백발성성한 할머니 한 분이 방문을 열고 나그네를 부른다. 노인은 거동이 불편한지 다리를 끌며 마루로 나온다. “서러워 죽겄소. 이러고 살면 뭐한다우. 아들 죽고 울고 다니다가 한 다리가 부러져 버렸소.” 관절염에 시달린 노인의 손가락들도 모두 비틀려 버렸다. “날마다 일만 하고 살았응께 손도 발도 이라고 오그라졌소. 어서 가야 할 틴디, 안 강께 걱정이오.”

노인은 광주에 살던 아들을 잃고 벌써 여섯 해째 상심에 빠져 허깨비처럼 살아왔다. 작년에는 딸마저 유방암으로 앞세워 보냈다. “나 혼자 엎어져 있응께 사람도 아녀요. 날마다 눈물만 흘리며 살고 있소. 밤낮 앉아서 땅굴만 파고 있소. 그 일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 이렇게 종일 들어앉아 땅굴만 파고 있소. 며칠씩 잠도 안와 헛굴만 파고 앉았소. 자식 보내놓고 놈 부끄러워 집 밖으로도 못 나가고 담 안에서만 사요.”

노인은 아들 둘, 딸 열을 낳으셨지만, 아들 둘, 딸 넷은 먼저 보냈다. “아들이 참 잘 났었는디. 마흔아홉에 가버렸어. 내 아들 가버링께 나 찾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그랑께 분하고 짠하제.” 영감은 일흔넷에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뒤 영 기별이 없다. “영감은 자식들 하나도 안 앞세우고 갔어. 빙나 갖고 여드레 만에 가버렸어. 드러눕자 물 한 방울 안마시고 여덟 날 누워 있다 그냥 갔어. 자식들 다 앉혀놓고 갔어. 험한 꼴 안 보고. 팔자가 좋은 양반 아니오. 참 복도 많은 영감이요.”

자식들이 모시겠다고 해도 안 가고 요양병원에 입원하라 해도 안 하고 섬에 혼자 사는 노인. “내가 뭐하러 병원에 간다우. 얼마나 더 살라고. 벌써 춥소. 추우면 뼉다구 오그라징께 불 넣고 사요.” 백발성성한 노인은 여든넷. “내 나이 다 먹고 남의 나이 넷이요.” 노인은 벌써 선산에 묘지도 잡아 놓고 왔던 곳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린다. “나는 내 땅으로 갈라고 병원에 안 가라우.”

걷지도 못하는 불편한 노인 집, 안팎이 다 정갈하다. “풀풀 기어 댕기면서라도 걸레 갖고 방 닦고 부엌 닦고 그라요. 그래도 여가 내 집이라 내 맘대로 하고 있응께 질로 편하요. 혼자 있응께 맘 편해요. 라멘도 해묵고, 전기밥솥에 밥도 해묵고. 나 울고 싶으면 울고, 먹고 잡으면 먹고.”

노인은 누구 눈치도 안보고 울고 싶을 때 맘껏 울고 배고플 때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 수 있는 집이 가장 좋다. 그래도 혼자 문밖출입을 하지 않고 틀어박혀 살아가니 더러 교인들이 교회에 나가자고 찾아오기도 한다. “교회 다니라 하면 나가 그라요. 하느님 아부지가 누구는 차별하겄소. 교회 다니나 안 다니나 아부지 아들이제. 어떤 자식은 자식 아니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다 같은 자식이제. 교회 안 댕긴다고 자식이 아니겠소. 바람만 불어도 아부지 살려주시오. 그라고 사는 세상 아니요. 그라요 내가.”

강제윤  editor@mediaso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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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윤 시인/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editor@mediasoom.co.kr
섬을걷다, 자발적 가난의 행복, 보길도에서 온 편지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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