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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당한 역사인식이란

강화 볼음도에서 나와 오늘은 또 답사팀 30여명을 이끌고 진도로 가는 중이다. 삼별초의 근거지였던 강화에서 또다른 삼별초의 근거지였던 진도로 가는 것이다. 역사적 평가와 달리 진도 섬 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삼별초는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점령자였고 수탈자였다.

진도 삼별초 항몽운동 운운하지만 본질은 무신권력유지였고 진도 섬주민들은 그 희생양이었다. 강화시절에도 내륙의 백성들이 몽고군의 칼날에 도륙당할 때 무신들은 호의호식하며 권력투쟁이나 일삼았고 그 앞잡이 노릇을 한것이 삼별초였다. 그들은 심지어 전쟁중인 고려 본토의 농민항쟁을 진압하고 살륙을 일삼지 않았던가.

30년 전쟁을 종식시키고 무신 정권에 빼앗겼던 왕권을 되찾기 위해 고려정부가 원나라에 굴복해 강화협정을 하고 개경천도를 단행하자 삼별초는 강화도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김통정, 배중손 등의 삼별초 지도부는 왕실 종친이었던 왕온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고 진도로 근거지를 옮겼다.

1000여척의 선단을 이끌고 진도를 점령한 삼별초는 항몽 근거지인 용장산성과 왕궁 등을 건설하며 수많은 진도 섬 주민들을 강제노역에 동원했다. 진도 섬 주민들은 여원연합군의 진도 공격 때는 화살받이가 되어 목숨을 잃었고 삼별초난이 진압된 뒤에는 수많은 진도 섬 주민들이 포로로 끌려갔다.

또 얼마 후에는 주민 전체가 영암과 해남으로 강제 이주당해 섬은 텅 비었고 주민들은 89년 동안이나 고향인 진도로 돌아가지 못한 채 디아스포라가 돼야했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는 삼별초 항쟁만 가르치지 진도 섬사람들의 희생에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이게 과연 온당한 역사인식인가!

강제윤  editor@mediaso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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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윤 시인/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editor@mediasoom.co.kr
섬을걷다, 자발적 가난의 행복, 보길도에서 온 편지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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