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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것들 5] DJ(디제이)


안녕하십니까? 여러분의 DJ, 박민입니다.
오늘도 잊지 않고 음악다방 랑데부를 찾아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 창밖엔 대지를 적시는 비가 촉촉하게 내리고 있습니다.
이런 날이면 왠~지 첫사랑 순심이가 떠오르곤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추억을 갖고 계십니까.
오늘 첫 곡으로 CCR의 who'll stop the rain 들으며
여러분과 함께 추억 속으로 흠~뻑 빠져 들어가 보겠습니다.


자욱한 담배연기 사이로 유영하듯 흐르는 선율. 구석진 자리에 앉아 황홀한 듯, 넋이 빠진 듯 초점이 흐려진 두 아가씨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 유리 상자 같은 뮤직 박스가 보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드디어 우리의 주인공을 만난다. 이름 하여 DJ(disc jockey). 빽빽하게 꽂힌 LP를 병졸처럼 거느리고 앉아 가끔은 무심을 가장한 시선으로 다방 안을 훑는다. 음, 오늘도 왔군. 리퀘스트(request, 음악신청서)를 보내주는 단골들에게 가끔 눈인사도 던진다. 길게 기른 머리, 멋들어지게 감은 빨간 스카프, 체크무늬 셔츠는 단추 두 개를 풀어 놓았다. 폼생폼사! 야성미는 DJ의 생명. 뒷주머니에는 흑선풍 이규의 도끼를 빼닮은 ‘도끼 빗’이 꽂혀 있다. 가끔은 그걸 꺼내어 머리를 빗어주거나 흘러내린 머리칼을 멋지게 채어 올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걸어놓은 음악이 끝났다. 오늘은 무슨 얘기로 한 시간 반을 채워볼까. 어차피 팝송 해설은 변두리다방 수준에 어울리지 않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가 최고다. 참기름을 바른 듯 매끄럽고 약간은 느끼한 음성, ㅅ발음은 ㅈ을 닮아있다. 오늘은 평소보다 목소리를 한층 더 깔아본다. 비가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DJ의 미덕은 분위기. “오빠. 멋져”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 오늘도 음악과 팬이 있어 행복하다.

음악다방. 분명히 말해두지만 명동의 필하모니나 르네상스 같은 ‘음악 감상실’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1960년대에서 80년대 초중반, 변두리까지 빠지지 않고 들어섰던 그 다방들 중 하나라야 이야기가 펄펄 뛰는 잉어마냥 재밌어진다. 약간 어두컴컴하고 퇴폐적인 냄새도 섞인, 그래서 조금은 추레하고 2% 정도는 부족해 보이던 그곳. 그곳의 DJ라야 팝송의 영어단어 한 둘쯤 꼬여도 괜찮다. 우리의 이웃, 아니 친구 같고 형 같고 오빠 같은 그들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 중 하나였다. 손님도 그리 잘날 필요는 없다. 오로지 남진의 ‘님과 함께’만 좋아해도 상관없다. 대학생 배지를 달고 발끝을 까딱거리는 손님 중 하나 둘은 가짜일지도 모른다. 언니의 가발을 쓰고 온 여고생이 끼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캐묻거나 나무라는 사람은 없다. 중요한 것은 차와 음악과 DJ지 족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의와 희망을 반반쯤 어깨에 지고 다니는 재수생이 좀 길게 죽친들 어떠랴. DJ의 안개처럼 모호한 목소리에 묻어 있던 마약 같은 위안. 집에 갈 버스비까지 탈탈 털어 쓰디 쓴 한 잔의 커피와 바꿔도 아깝지 않은 날은 있는 법. 회색빛으로 암울했던 시대, 퇴락한 골목에도 청춘이 아우성처럼 피어나던 시절이었다.

전설이 되어버린 DJ. 그들 중 누구는 아직도 어딘가에서 은밀한 목소리로 음악과 사랑을 얘기하고 있을까? 비가 쏟아지는 어느 여름날, 그 흔적을 따라 먼 길을 떠났다. 부산시 사직동 사직구장 근처의 라이브카페 하늘소. 그곳에서 DJ, 김래진씨를 만났다. 50세를 눈앞에 둔 그는, 지금도 뮤직 박스에 앉아 음악을 들려주는 현역 DJ다. 음악다방 DJ의 족보로 보면 막내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음악과 함께 살아서일까. 30대로 보일만큼 동안이다. 앞에서 나왔던 변두리다방 DJ보다는 훨씬 세련된 ‘중심가DJ’였을 거라는 건 이야기 몇 마디로 알 수 있다.

1980년대 초 대학 1학년 때 입문한 뒤, 몇 년간의 직장생활을 빼놓고는 계속 DJ로 살았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 친구와 함께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한 영화 ‘졸업’을 보러갔습니다. 그때 들은 OST에 반해 그 영화를 세 번이나 봤습니다. 그 길로 음악의 세계에 풍덩 빠져버렸지요.” DJ 인생의 단초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음악다방에서 DJ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전공이 교육학이었습니다. 얌전하게 교사가 될 줄 알았던 장남이 다방에서 ‘음악이나’ 틀어주고 있으니 집안 어른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요.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 찾아오기도 하고….”

어른들의 성화에 못 이겨 다시 책을 잡았지만 이미 물 건너간 공부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 교사가 아닌 일반회사에 취직했다. 하지만 이미 한번 방향을 튼 운명의 지침은 그를 얌전한 회사원으로 살아가게 놔두지 않았다. 내림굿을 거부한 처녀처럼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더군요. 온갖 음악들이 환청처럼 따라다니는 겁니다.” 결국 4년 만에 회사를 때려치우고 말았다. 신내림이라도 하듯 퇴직금에 빚까지 내어 이미 끝물에 접어들었던 음악다방을 열었다. 지인들은, 하던 것도 접어야 할 판에 음악다방이 다 뭐냐고 난리였다. 하지만 뮤직 박스를 떠나서는 죽을 것 같았다.

그가 회사원에서 DJ로 돌아간 것은 음악에 대한 열정과 뮤직 박스에 대한 그리움도 있었지만, 과거의 인기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83년 90분짜리 한 타임에 12만원을 받았습니다. 저는 제법 인기가 좋은 편이라서 하루에 세 네 곳씩 뛰었지요. 음악다방 사장보다 DJ 파워가 더 셀 때였습니다. DJ 하나 잘 만나면 돈을 버는 거고 인기 있는 DJ가 떠나면 파리 날리게 되는…. 그러니 최고의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요.”

미련이 남는 게 당연했을 것 같다. 한 곳에서 12만원이면 세 곳만 해도 36만원. 그 당시 어지간한 샐러리맨의 한 달 봉급과 별 차이 없는 돈이었으니 얼마나 많이 벌었을지 짐작이 간다. 그러니 세상이 돈 짝만 하게 보이고 간은 배 밖으로 나올 수밖에. 직장생활이 불가능한 체질로 바뀌었을 것이다.

“철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음악다방 주인을 보면 ‘당신 장사는 내가 다 해준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물론 DJ가 모두 그런 인기를 구가했던 건 아니다. 청년 10명 중에 2~3명은 LP라도 뒤집어봤다고 손들고 나서던 시절이니, 그들이라고 왜 ‘급수’가 없었을까. “DJ협회라는 게 있었는데요, DJ가 가장 많았을 때는 100만 명을 헤아렸다고 합니다. 종류도 무척 많았어요. 음악 해설을 주로 하는 정통DJ 외에도 입담을 위주로 하는 개그DJ, 시사를 소재로 삼는 시사DJ…. 물론 멘트는 생략하고 LP만 뒤집는 DJ도 있었지요. 더 재미있는 건, 그 시절엔 DJ가 없는 곳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음악다방은 말할 것도 없고 레스토랑, 학사주점, 떡볶이 집, 미용실까지….”

그렇게 인기를 누리던 음악다방은 왜 사라졌을까. 그 많던 DJ들은 어디로 갔을까. 진행은 서서히 됐겠지만 결과는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쳤다. 세상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고 음악다방들은 서리 맞은 배추처럼 시들어갔다. 김래진 씨는 듣는 시대에서 보는 시대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칼라TV가 집집마다 보급되고 댄스음악이 음질 좋은 싱글로 쏟아져 나오면서 모든 게 바뀌기 시작했지요. 젊은이들은 음악다방을 찾는 대신 클럽으로 갔습니다. 음악을 앉아서 듣는 시대는 가고 춤추며 듣는 시대가 찾아온 겁니다. 그러면서 디스코DJ라는 새로운 장르도 등장하게 됐고요”

그 시절을 회상하는 김래진 씨의 얼굴에 잠시 빈 하늘같은 허허로움이 머물다 간다. 긴 기다림에 대한 보답일까? 요즘 대중음악 세상은 또 한 번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래진 씨는 아날로그의 시대가 돌아왔다고 강조한다. 최근 아날로그 음악을 듣기 위해 카페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70~80이나 ‘세시봉’ 같은 복고 바람이 한몫을 했다. 그래서 그는 더욱 행복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으니 행복하지요. 집에서도 떳떳해졌고 또 언론에서 취재를 올 만큼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고…. 죽는 날까지 DJ로 살아갈 겁니다.”

인터뷰 말미에 김래진 씨에게 아날로그 음악과 디지털 음악의 차이가 뭐냐고 물었다. “아날로그, 즉 LP로 듣는음악은 수고를 동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공간을 갖춰야 하는 건 물론, 스위치 하나로 듣는 디지털 음악보다 여러 절차가 필요하지요. 그 대신 LP음악은 다도(茶道)를 즐기며 차를 마시듯 몸으로 느끼는 맛이 있습니다. 먼저 상상하고 맛을 보고 듣고… 우러나는 맛이 두 배 정도는 더 크지요. 엄마 품 같은 푸근함이 있다고 할까요”한번 터진 그의 음악 이야기는 좀처럼 끝날 줄 모른다.열정이 분수처럼 솟아오른다.기차시간은 다돼가는데….

“아날로그 음악이 다듬어지지 않은 느낌이 든다면 디지털 음악은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냉정한 음악입니다. 직선적이고 정이나 여운이 없이 스쳐지나가는 음악이지요.” 어디 음악뿐일까. 빛의 속도로 달려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무한경쟁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감성이나 여운이란 단어는 사어(死語)가 된지 오래다. 그 대가로 사람들은 하나하나 섬이 되었다. 비바람은 몰아치는데 연락선마저 끊겨버린 섬…. 그런 세상에 DJ가 우리 곁에 남아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전설이 되어 액자 속에 들어간 그 시절과 삭막한 이 시절을 연결해 주는 끈 같은 존재, 그들을 통해 꽃처럼 아름답던 날의 ‘우리’를 만날 수 있기에….

사강  sagang@mediaso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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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강 / 여행작가 sagang@mediasoom.co.kr
자작나무 타오르는 소리처럼 이 가을 자작!자작! 그렇게 따듯하고 환하게 당신 마음과 영혼을 위로해 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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