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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네프의 연인들이 남긴 ‘사랑의 자물쇠’

‘사랑의 자물쇠’는 이탈리아의 작가 페데리코 모치아의 《하늘 위 3미터》와 《너를 원해》에서 연인이 영원한 사랑을 다짐하며 자물쇠를 채우는 장면에서 시작되었다.

11년 전 피렌체에 갔을 때 베키오 다리에 걸려있는 자물쇠를 처음 보았다. 이 다리에 사랑의 자물쇠들이 채워져 있는 것은 베키오 다리가 지닌 남다른 의미 때문일 것이다. 14세기에 아르노 강 위의 세워진 고픙스러운 다리, 베키오 다리는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만난 장소다. 그런 이유로 이 다리는 운명적인 사랑, 영원한 사랑을 한 단테를 상징한다.

내가 피렌체를 잠시 스쳐지나가던 그때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연인들이 증표로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를 강물에 버리기 시작하던 때였다.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나오는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난다”는 말이 널리 회자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두오모 성당을 찾던 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때는 다리에 자물쇠가 많지 않았다.

연인들이 걸어둔 자물쇠를 보면서, 사랑을 지켜내는 게 얼마나 어려우면 저렇게 자물쇠를 걸어야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물쇠를 건다고 맹세가 지켜지는 것도 아니겠지만, 맹세를 해야만 하는 인간의 나약한 사랑이 덧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추억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행복이고, 혹은 사랑의 자물쇠로 사랑을 좀 더 길게 간직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내게는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날 것’이라는 간절함이 담긴 두오모 성당의 꼭대기가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생각의 꼬리는 2008년 파리 ‘예술의 다리(퐁 데자르, Le Pont des Arts: Le pont의 의미는 프랑스어로 다리이다.)’에서 다시 이어졌다. 다리 위에 그때까지는 없었던 자물쇠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사람이 걸면 또 한사람이 걸고…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자물쇠에 깜짝 놀랐다. 어쩌다 한번 다리를 건널 때마다 자물쇠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보였다. 세계의 연인들이 모두 파리로 와서 사랑의 맹세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리는 자물쇠로 짓눌리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맹세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사랑을 지켜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려주는 것처럼, 다리는 자물쇠의 무게에 힘겨워했다.

결국 맹세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퐁데자르가 서서히 균열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잠시의 휴식을 주는 주기적 철거는 해법이 되지 못했다. 철거되면 순간적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결국 다리 난간을 패널로 막아놓는 극단적인 조치를 하게 되었다. 그래도 연인들은 퐁데자르에 자물쇠를 거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가로등이든 다리 틈이든 어디든지 걸어놓았다.

센 강에는 지하철이 다니는 철교와 보행할 수 있는 다리 등 모두 37개의 다리가 있다. 그 중 가장 오래된 다리가 퐁네프(Pont Neuf)이고, 관광객이나 파리지앵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다리가 퐁데자르이다. 퐁데자르는 루브르 박물관과 프랑스 최고의 국립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로 이어지는 다리라라는 뜻에서 예술의 다리로 불리게 되었다. 차가 다니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다리의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책을 읽고, 화가들은 그림을 그린다. 따듯한 밤에는 옹기종기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쉼터이자, 시원한 강바람이 불기 때문에 한여름 밤에 가장 인기 있는 다리이기도 하다. 퐁데자르에 사랑의 자물쇠를 걸지 못하게 되면서 연인들은 다른 다리들에 자물쇠를 걸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열쇠들이 걸린 다리가 퐁데자르와 마주보는 퐁네프이다.

퐁네프는 레오 카락스 감독의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로 유명해졌다. 치열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담은 퐁네프의 연인들은 퐁네프의 다리 위에서 보는 풍경처럼 낭만적이지 않다. 불쇼를 하며 도시의 삶을 이어가는 노숙자 알렉스가 살아가는 공간이 보수공사로 출입이 차단된 퐁네프다. 시력을 잃어가는 병에 걸려 생을 놓아버리듯 방황하는 화가 미셀은 이곳 금지된 공간에서 알렉스를 만나 사랑을 나눈다. 첫사랑 줄리앙을 잊지 못하는 미셀과 미셀을 뜨겁게 사랑하는 알렉스. 그 둘은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하는 불꽃놀이가 하늘을 수놓는 날,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에 맞추어 춤을 추며 불꽃처럼 타오르는 사랑을 확인한다. 그날 밤 알렉스는 잠든 미셀 옆에 쪽지를 남긴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일 아침 ‘하늘이 하얗다’고 말해 줘. 그게 만일 나라면 나는 ‘구름이 검다’라고 대답할 거야. 그러면 서로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거야.”

다음 날 아침에 미셀은 ‘하늘이 하얗다’고 말하고, 알렉스는 ‘구름은 검다’라고 답한다. 둘은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아닌 퐁네프의 연인이 된다. 그러나 미셀의 눈을 고칠 수 있다는 치료법이 발견되어 가족들이 그녀를 찾고, 그녀를 잃을까봐 알렉스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감춘다. 결국 가족이 자신을 찾는다는 것을 알게된 미셀은, “알렉스. 널 진심으로 사랑한 적은 없어. 날 잊어줘.”라는 글을 퐁네프 벽에 붙여놓고 떠난다. 알렉스에게 생의 전부인 여자 미셀은 그렇게 무정하게 떠나고, 시력을 회복한 그녀가 알렉스를 다시 찾아오고, 둘은 배를 타고 미지의 세계로 떠난다. 퐁네프의 연인들, 알렉스와 미셀은 영원한 사랑의 맹세대신, 영원한 사랑으로 가는 배를 탔다.

그들은 센 강을 떠났지만, 강은 여전히 흐르고, 다리 위의 자물쇠들이 늘어간다. 아무도 열지 못하도록 던져진 열쇠들은 주인들의 사랑을 기억해내려고 강바닥에서 뒤척거리며 녹슬어가고 있을 것이다.

퐁데자르에서 철거된 자물쇠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일부는 녹여 파리를 추억하는 기념품으로 만들어져 판매하고, 나머지는 고철로 팔아 수익금 10만 유로 전액을 난민구호를 위해 쓸 예정이다. 사랑의 맹세는 이렇게 아름다운 꽃으로, 향기로 피어나려고 하는 중이다.

조미진  mijin6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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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진 mijin68@gmail.com
실수쟁이로 삶에 서툴지만, 사람을 좋아하며 노마드처럼 살기를…이방인으로 사는 것을 사랑하며 바람이 부르는 대로 살려고 한다.
저서<프랑스에서 한국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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