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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다이어리 25] 왜 쿠바에 가십니까?
카리브해의 아침

약 13시간의 비행, 그리고 덤으로 3시간 30분. 앞의 숫자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캐나다 토론토 피어슨공항까지 걸리는 시간이고, 뒤의 숫자는 토론토에서 아바나 호세마르티공항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쿠바에 가려면 그렇게 긴 시간을 비행기 속에서 자고 깨고 먹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환승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만 하루를 꼬박 비행기 안에서 지내는 셈이다.

그들 부부를 만난 것은 아바나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한 직후였다. 나는 ‘다행히’ 통로 쪽 자리(화장실에 다니기 좋다는 이유로 장거리 비행 시 선호한다)였고 내 안쪽에 앉은 사람들은 더욱 ‘다행히’ 한국인이었다. 인사는 내가 먼저 했다. 몇 시간만 참으면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안도감이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60대 정도로 보이는 부부는 무척 다정한 모습이었다. 초로의 부부가 함께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다복’하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더구나 가까운 곳도 아닌 쿠바까지.

“안녕하세요? 두 분만 가시나 봐요?”
“아녜요. 여행사 사람들 하고 같이 가요. 모두 여섯 명인데 각자 떨어져 앉아서….”

남자는 웃기만 하고 여자가 꼬박꼬박 대답을 했다. 이번엔 그쪽에서 물었다.

“선생님은 혼자 가시는 거예요?”
“아닙니다. 저도 일행이 있습니다.”
“처음은 아니신 것 같은데.”
“예, 두 번째 가고 있습니다. 여행사 직원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몇 분을 모시고 가게 됐네요.”

이야기는 한참동안 이어졌다. 한 번 먼저 다녀온 것밖에 없는데, 나는 졸지에 쿠바 전문가가 돼버리고 말았다. 그런 내가 물었다.

“그런데, 왜 하필 쿠바예요? 젊은이들은 꽤 많이 가지만 연세 좀 드신 분들은 많이 망설이는 곳인데.”

오랜 기다림 끝에 말할 기회가 왔다는 듯 남자가 대답했다.

“대학에 다닐 때 쿠바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한 편 본적이 있어요.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데, ‘쿠바미사일사태’와 관련된 내용이었어요. 고문하는 장면도 나오고… 아무튼 아름다운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쿠바가 꼭 가보고 싶은 나라가 됐어요. 갈수 없는 나라라 더욱 가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분명히 북한과 닮았는데, 또 뭔가 다를 것 같고… 오랫동안 벼르다가 이번에 가는 것입니다.”

펠리칸에게 먹이를 주는 노인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들 부부는 제대로 된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분명한 동기가 있기 때문이다. 쿠바는 ‘그냥 한 번’ 가보는 여행지는 아니다. 다른 곳과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가야 행복해지는 게 쿠바여행이기 때문이다. 쿠바여행을 꿈꾸는 사람은 출발하기 전에 반드시 자가진단이 필요하다. 잘못하면 욕이나 잔뜩 퍼붓다가 돌아올 수 있다. 돌아와서도 돈이 아까워서 여러 날 잠들지 못할 수 있다. 스스로 판단할 때 다음과 같은 유형이라고 생각하면 얼른 다른 나라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첫째, 로마의 유적이나 영국의 박물관 같은 곳을 기대하는 사람은 절대 쿠바를 가면 안 된다. 스페인이 전 지역을 점령한 1514년 이전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 땅에 스톤헨지나 피라미드, 만리장성 같은 ‘번듯한’ 유적이 있을 리 없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기대한 사람에게 실망을 주기 딱 알맞다.

둘째, 가는 곳마다 누군가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 혹은 그런 방식의 ‘관광’에 익숙한 사람도 쿠바를 가면 안 된다. 쿠바는 설명으로 배우는 곳이 아니다. 시간이 멈춰 박제로 걸린 거리를 천천히 걸어 다니며 고개를 주억거리고 느낌을 마음에 적는 곳이 바로 쿠바다.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며 한 소식 했다는 선승처럼, 길가에 구르는 돌을 보며 아하! 하고 무릎을 치는 곳이 쿠바다. 언젠가 잃어버렸던 시간과 반갑게 해후할 줄 아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곳이 쿠바다. 아름답다고 가르쳐줘야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전혀 아름답지 않는 곳이다.

셋째,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에 감동할 준비가 안 된 사람도 쿠바에 가면 안 된다. 쿠바의 자연은 아름답다. 하지만 눈길 가는 곳 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는 곳은 아니다. 쿠바에 가지 않으면 절대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을 뿐이다. 그게 무엇인지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 감동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에게는 귓불을 스치는 바람조차 감동스럽기 마련이다.

넷째, 편한 잠자리와 달콤한 음식을 여행의 백미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쿠바에 가면 안 된다. 때로는 따뜻한 물에 인색하거나 문이 삐걱거리는, 그런데도 가격은 수십 만 원 대인 호텔이 그곳에 있다. 민박인 까사가 있지만, 문명의 풍요를 마음껏 누리는 서구세계처럼 모든 게 편리하지는 않다. 다만 아침이면 정성들여 식사를 준비해주는 까사 아낙네의 넉넉한 미소가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곳이 천국이다.

카리브해의 오묘한 물빛

쿠바는 가보지 않은 곳조차 그리워할 줄 아는 사람이 가는 곳이다. 넘쳐흐르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만나러가는 곳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러가는 곳이다. 눈이 아니라 가슴으로 감동할 줄 아는 사람이 가는 곳이다.

헤밍웨이와 체 게바라, 그들이 남긴 발자취와 이야기가 첩첩 쌓여있는 곳. 제국주의의 폭력 속에서도 살아남은 풀잎 같은 사람들의 노래와 춤이 있는 곳. 불편 속에서도 끝내 행복해져서 돌아오는 곳. 그곳이 쿠바다.

이호준  sagang@mediaso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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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시인.여행작가.칼럼리스트 sagang@mediasoom.co.kr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지중해를 걷다><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안부><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나를 치유하는 여행> 등의 여행서, 산문집과 캘리그래피 시집 <사랑은 저 홀로 아름답고>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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