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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산티아고 순례길 16] 한걸음 한걸음이 아깝다

오늘도 까스트로헤리츠에서 해 뜨기 전에 출발, 안개 가득한 들판을 지나 1100m 고지에 오르니 기가 막힌 운무를 만납니다. 이 순간의 탄성이 절로 올라와 한참을 머물며 아침을 맞습니다. 이런 자리에 홀로 설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요. 움직여 만나는 사랑입니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독일 친구가 내일은 어디까지 갈 계획이냐고 묻습니다. 그래서 나는 "I want to stay on my road as long as I can."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컨디션만 허락한다면, 숙소만 준비된다면 정말 그러고 싶지요. 길 위에 서 있는 것이 참 좋습니다. 한 걸음이 아깝습니다.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생각에 빠지면 자꾸 소중한 길을 놓치기 쉽네요. 삶이 그렇습니다.

자, 땀이 식기 전에 길을 떠나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장면도 페이스를 놓치면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길은 가는 거지요. 숨이 차오르면 멈추어 땀을 식히고 땀이 식어 추위가 몰려오기 전에 또 떠나는 것이 길의 법칙입니다.

겨울 까미노는 정말 길에 아무도 없습니다. 바람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이 넓은 길에 대지에 나 홀로이니 내가 왕입니다. 사실이 그렇지요. 내가 놓치고 살고 있을 뿐입니다.

저 앞에 아스라이 보이는 마을, 언제 다다를까 까마득합니다. 그런데 한 걸음씩 옮기다 보면 어느새 눈앞에 마을이 나타나 있지요. 자동차를 타고 씽 가는 사람은 절뚝거리는 발로 한 발자국씩 내딛어 다다르는 그 길의 기쁨을 알까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빨래를 해야지 했는데 도착한 알베르게에 세탁 시설이 없습니다. 한국 아주머니 한분이 먼저 도착해 계시는데 난방이 안 된다고 난색입니다. 아, 빨래야 하루 더 입으면 되구요. 난방이야 밖에서 자본 나에게는 지붕과 벽이 있는 것만도 천국입니다.

오늘은 먼저 와 밥을 해둔 한국 아주머니 덕에 밥도 먹고, 동네 슈퍼마켓이 문을 열고 가서 양파 감자 마늘 고추 등 야채를 사다가 볶아서 또 밥을 먹었습니다. 스페인은 가게들이 낮에는 문을 닫고 저녁 무렵이 되어서 다시 문을 여는 문화가 색다르답니다.

낮잠을 자는 시에스타 전통 때문이라지요. 모두가 감사할 일입니다. 오늘은 알베르게가 적당하지 않아 일찍 길에서 멈추게 되었습니다. 와이파이도 되지 않으니 푹 쉬고 내일은 더 일찍 길을 떠나 길에 더 오래 머물러야겠습니다.

(20151212 #산티아고 16일 417.7km 까스트로헤리츠 - 뽀블라치온 데 깜뽀스)

오동성  eastsain@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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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성 eastsain@chol.com
목사, 2004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해 목회와 공동체 일을 해왔고 지금은 토론토의 한인 양로원에서 어르신들의 노년을 섬기며 여행과 명상, 일상생활을 통해 길 위에서 하늘을 보고 나를 찾아가는 안내를 하며,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세월호를 기억하는 토론토 사람들>과 함께 유가족과 연대하여 세월호 진상규명과 그를 통한 안전한 사회를 세우는 일에 힘을 다하고 있다.
· 저서 : 지금 여기 그리고 당신과 함께, 다른 우리
· 역서 : 칼릴 지브란 예언자, 나마스테
https://www.facebook.com/easts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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