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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돋보기-上] 대학의 탄생부터 역할까지 A to Z.

자율전공학과를 아시나요? 자율전공은 대학 입학 후 다양한 교과목을 수강해보고 전공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인데요. 대학들은 ‘자신의 적성과 흥미, 재능을 파악한 전공 결정’이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자율전공학과 신설에 열을 올렸죠. 그런데 참 아이러니합니다. 본래 대학이란 건 특정 학문에 뜻이 있어 진학하는 곳이 아니었던가요.

바야흐로 일단 대학에 들어가고 보자는 시대입니다.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은 70.9%(2014년 기준)로,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다고 합니다. 초등학생은 벌써 자기 몸만 한 책가방을 메고 학원에서 문제집과 씨름하고 있고요. 수험생은 명절마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 ‘이번에 누구는 명문대에 갔다더라’는 덕담 아닌 덕담을 듣죠.

대학. 대학. 대학.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습니다. 이 시대 청춘 대부분은 대학에 다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만큼 우리는 대학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까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대학의 탄생부터 역할까지 A to Z.

대학의 탄생, 교수와 학생 사이 ‘교육 길드’

대학은 중세시대 유럽에서 처음 출현했습니다. 1088년 볼로냐대학교를 시작으로 비슷한 시기에 파리대학교, 옥스퍼드대학교가 생겨났죠. 이전에도 대학과 유사한 고등교육기관은 존재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소피스트들이 문법이나 논리학, 수사학 등을 돈을 받고 가르쳤지요. 플라톤은 아카데미를 만들었고요. 우리나라에도 고구려의 태학이나, 고려의 국자감과 같은 고등교육기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대학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체계적인 교육체계가 없거나, 국가 주도의 획일화된 교육과 같은 진로, 혹은 단순한 학파에 그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회 보편적인 현상으로 발전하지 못했죠.

중세 볼로냐 대학

전문가들은 중세에 대학이 등장하게 된 배경으로 세 가지 원인을 꼽습니다. 도시의 성장, 십자군 전쟁, 교회와 국가의 조직화가 그것이죠. 먼저 중세에는 상업의 발달로 도시가 성장했습니다. 고대보다 비교적 자유가 보장되었죠. 당시 도시의 주요 구성원은 상인과 수공업자였는데, 흔히 길드(Guild)라고 불리는 동업자 조합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대학도 교수와 학생 사이 일종의 ‘길드’였습니다.

십자군 전쟁도 대학 형성에 기여했는데요. 전쟁으로 동방의 새로운 문명을 접한 탓이죠. 특히 이슬람 학자들에 의해 보존되던 그리스 철학자들의 저술이 재발견되면서 지적 호기심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가톨릭 교회와 국가의 정교한 조직화도 필요했습니다. 중세에는 교황을 중심으로 가톨릭 교회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시기였습니다. 동시에 국가는 봉건제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하고 있었죠. 그 말인즉슨 행정, 재무, 법률 등을 관리할 교육받은 전문 지식인의 수요가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중세 대학은 지금의 대학 체계와 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학부-석사-박사로 이어지는 학위 체계입니다. 중세 대학은 4학부 체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교양학부, 의학부, 법학부, 신학부가 바로 그것이죠. 학부 수준에서 언어, 문법, 수사, 논리 등 교양교육을 받고, 박사 단계에서 의학, 법학, 신학과 같은 전문 교육을 받았습니다.

대학이 형성되었던 근본적 동기?
<지적 욕구 vs 실용적 목적>

대학은 특정한 시점에 특정한 건물, 장소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요인들로 탄생했습니다. 다양한 요인만큼 대학이 형성되었던 근본적인 동기에 대한 의견도 엇갈리는데요. 순수한 지적 탐구 정신이 대학 발생 요인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는 반면에, 교육이란 실용적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고 지적하면서 대학 역시 교회의 위계조직이나 정부 관료를 양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두 의견 모두 정답은 없습니다. 교양교육과 전공교육 중 어떤 것을 더 중요시하냐 정도의 차이겠죠. 이는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는 논쟁거리입니다.

부강한 국가를 위해 ‘연구’하는 대학

중세 대학이 교육 그 자체에 목적을 두었다면, 근대 대학은 교육과 함께 연구의 기능도 함께 수행했습니다. 근대는 혁명의 시대였죠. 하루가 멀다고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과학혁명으로 산업화가 진행됐고, 민주주의가 발전했습니다. 자유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 보수주의, 무정부주의 등 다양한 이념도 함께 출현했죠.

국가 간 경쟁도 치열했습니다. 식민지의 범위가 확대되고 제국주의 열강이 대립했습니다. 특히 양차 세계대전 발발하면서 국가 간 경쟁은 가속도가 붙었는데요. 이에 따라 근대 대학은 국가 발전을 위해 정치권력의 엄격한 감시와 통제를 받게 됩니다. 이 시기에 특수학교와 전문학교들이 대거 등장하죠. 연구중심의 독일 베를린대학교도 이때 만들어졌습니다. 부강한 국가 건설을 위해 인문주의에 기초한 교양교육보다는 과학이나 기술에 의한 교육이 대학 교육의 핵심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근대 대학이 정부의 지배를 받았다면, 현대 대학은 기업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요. 오늘날 대학의 기업화 문제는 [대학 돋보기 - 下]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 주인공 대학

인적자원이야말로 어떤 자원보다도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죠. 대학을 통해 배출된 고급인력은 대한민국을 경제 대국 반열에 올려놓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민주화 운동은 또 어떤지요. 4·19혁명을 비롯한 많은 핏대 서린 민주화 투쟁이 대학가에서 시작됐습니다. 대학은 산업화와 민주화로 대변되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산실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초창기 대학은 선교활동의 일부로 탄생했습니다. 1800년대 후반, 선교사들이 복음과 문명 전파를 위해 학교를 세웠죠. 숭실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가 그렇습니다.

조선민립대학기성회창립총회기념

1918년 3·1운동 이후에는 민립대학 설립이 추진됐습니다. 민족의 자본으로 대학을 설립하자는 운동이 독립운동가를 중심으로 확산했습니다. 일제로부터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조선인 스스로가 강해져야 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끝내 일본의 방해로 민립대학 설립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일제는 서울에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합니다. 조선의 고등교육기관을 봉쇄할 목적이었죠. 독립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정치·경제·이공계열 등의 학부는 철저히 배제됐고, 일제의 식민통치에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법문학부·의학부만이 설치됐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번듯한 대학 하나 없던 우리나라에서 당시 경성제국대학은 가장 대학다운 대학이었습니다. 베를린 대학을 모델로 대학원까지 있던 연구중심 대학이었죠. 광복 후에는 지금의 서울대학교로 통합됐습니다.

대학의 역할?
교육, 연구, 봉사

대학은 시대 변화에 따라 각기 다른 역할을 수행해왔습니다. 시대적 상황을 수용하면서 변화를 거듭했죠. 변화 속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대학의 본질은 바로 ‘대학이란 학문을 추구하는 학자들이 공동체’라는 것이었습니다. 전인적 인간과 실용적 인재를 길러 내는 ‘교육’. 순수학문과 응용학문을 탐구하는 ‘연구’. 그리고 교육과 연구를 바탕으로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쓰는 ‘봉사’. 대학이 형성된 이래로 오늘날까지 굳건한 대학의 역할이자 본질이 아닐까요.

*본 기사는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김희찬, 남기원 교수의 <대학의 역사, 미래의 대학> 강의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최병헌 대학생기자  chbh10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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