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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다이어리 24] 공항에서 세 번 놀라는 이유
호세마르티공항의 내부 풍경

쿠바를 여행하기 위해 아바나의 호세마르티 국제공항에 내린 당신. 두세 번쯤은 놀랄 준비를 해야 한다. 국제공항이 왜 이렇게 작으냐? 혹은 왜 이렇게 초라하냐? 같은 지엽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입국심사대 앞에 서는 순간, 당신의 눈은 화등잔 만하게 커지게 된다. “어라? 왜 나오미 캠벨이 단체로 심사대에 앉아있지?”라고 혼잣말을 했다면 당신의 시각은 극히 정상이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아름다운 여성들이 당신의 입국을 ‘환영’하기 위해 늦은 밤까지 기다리고 있다. 볼륨감 넘치는 몸매, 배우 뺨치는 미모, 짧은 치마, 밝은 미소… (내 말을 증명하기 위한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게 조금 한스러웠다.) 여기 사회주의 국가 맞아?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물론, 남성이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이 친구들도 젊고 잘 생겼다. ‘첫 인상’을 좋게 만들기 위한 쿠바 정부의 ‘의도’가 들어있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다음으로 당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간편한 입국심사에 놀란다. “처음 방문하는 거냐?” “어디서 왔느냐?” “왜 왔냐?” “얼마나 머물 거냐?” 따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잊어도 좋다. 설령 묻는다 해도 어차피 스페인어이기 때문에 알아듣기도 어렵다. 눈짓, 손짓으로 지시하는 “모자를 벗어라” “안경을 벗어라” “카메라 앞에 서라” 정도만 따라하면 아무 문제없이 통과할 수 있다.

입국심사대를 찍을 수 없어서 보안요원(?)들을 찍었다. 뒤에 삼성 마크가 선명하다. (사진제공 : 정운욱)

내가 두 번째 갔을 때는 첫 번째보다 절차가 더욱 빨라져서 의아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피델 카스트로가 서거하기 전과 뒤의 차이였다. 즉, 피델의 시계보다는 동생인 라울의 시계가 빨라진 것이다. 여기서 시계란 개방의 속도를 말하는 것이다.

49년 동안 쿠바를 통치한 피델 카스트로는 2008년 2월에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사임하고 권력을 라울 카스트로에게 넘겼다. 피델에 비해 상대적으로 실용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 라울은 지난 10년간 꽤 빠른 속도로 개혁과 개방을 추진했다. 오바마가 쿠바를 방문하고 2015년 국교를 정상화한 것도 그의 작품이었다. 생전에 피델은 라울의 이러한 개방정책에 대해 적지 않은 우려를 했다고 한다. 미국을 믿을 수 없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런 피델이 떠난 지금, 쿠바의 앞날은 또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공항의 변화를 보며 라울의 시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 당신은 이제 한 번만 더 놀라면 된다. 이 험한 세상에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법. 입국심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면 지금부터는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왜? 수하물 때문이다. 호세마르티공항에서 수하물을 찾기 위해서는 간소한 입국절차에서 번 시간의 몇 배를 기다려야 한다. 정말 지겹게 안 나온다. 모든 짐을 하나씩 열어본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래 걸린다. 여럿이 함께 갔을 경우 한 두 사람의 짐이 특별히 늦게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 사람은 이중고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혹시 짐이 다른 곳으로 갔나? 하는 초조감과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 공항을 나가지 못한다는 미안함. 하지만 본인의 잘못일 리 없으니 너무 미안해 할 것까지는 없다.

수하물을 찾기 위해 하염없이 기다리는 여행자들

다른 승객들이 대부분 빠져나가고 텅 빈 공항에 초조함만 떠돌 무렵, 컨베이어에서 툭! 떨어지는 캐리어 하나. 그게 자신의 짐일 경우 눈물이 쏙 빠지도록 반가워 달려가는 것은, 호세마르티공항에서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다음에 다시 갈 때는 그것조차 개선되지 않았을까? 누가 뭐래도 라울의 시계는 피델의 시계보다 훨씬 빨리 돌아가니까.

이제 더 이상 놀랄 일은 없다. 작고 초라한 공항 건물(곧 신축을 한다는 소문은 소문으로 그치지 않을 것 같다)의 문을 열고 나가면, 훅! 하고 품에 안기는 열대성 기후 특유의 바람 정도야 어차피 예감했던 일이니까. 당신의 행복한 여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이호준  sagang@mediaso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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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시인.여행작가.칼럼리스트 sagang@mediasoom.co.kr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지중해를 걷다><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안부><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나를 치유하는 여행> 등의 여행서, 산문집과 캘리그래피 시집 <사랑은 저 홀로 아름답고>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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