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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다이어리 23] 마늘장수 청년이 있는 풍경

쿠바의 아침은 황금빛 햇살을 타고 온다. 그 햇살들은 또 어디선가 수런거리는 소음을 데려와 창문을 두드린다. 대기가 오염되지 않은 트리니다드의 아침햇살은 눈부시다 못해 찬란하다. 느지막하게 일어나 신발을 끌고 까사 문을 나서면 소음의 근원과 만날 수 있다. 바로 골목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다. 옹기종기란 말이 딱 어울릴 만큼 몇 사람씩 모여서 뭔가 쑥덕거리고 있기 마련이다. 골목 위를 얼기설기 가로지른 전선처럼 많은 이야기들이 길 위에 낭자하다.

러닝셔츠 차림으로 어슬렁거리는 사내들도 없지 않지만, 그 시간에는 대체로 아낙네들이 골목의 주인이기 마련이다. 까사의 안주인도 식료품 가게 아주머니도 나와 있다. 심지어는 학교나 직장으로 가야할 것 같은 젊은 처자들도 나와서 자기들끼리 뭔가 수군거리고 있다. 대체 아침부터 무슨 할 말들이 저리 많을까? 가족들 아침밥은 해결하고 나온 것일까? 아침운동을 입으로 시작해서 입으로 끝내는 것일까? 이방인의 시선은 늘 그런 사소한 게 궁금하다. 그렇다고 가까이 가서 귀를 기울여봐야 무슨 이야기인지 알 턱이 없다.

그렇게 시끌벅적한 이야기들의 사이를 개들이 질주하고 오토바이가 아슬아슬하게 뚫고 지난다. 손님이 있을 시간도 아닌데 비씨택시(자전거택시)를 끌고 나온 청년도 뻐기듯이 오간다. 분명 최근에 영업을 시작한 친구다. 어지간해서는 끄떡없던 사람들도 승용차가 지나가면 방앗간의 참새 떼처럼 우르르 흩어졌다 다시 모여든다. 물론 출근길인 듯 부지런히 걷는 사람도 없지 않다. 하지만 하릴없이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훨씬 많다.

마늘장수 청년

느닷없이 이야기 삼매경 사이로 끼어드는 이질적인 존재가 있기 마련인데, 마눌장수 청년도 그중 하나다. 몸을 진열대 삼아 양파를 주렁주렁 매달고 옆구리에는 마늘 꾸러미를 꿰찬 청년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타나는 시간은 거의 일정하다. 양파와 마늘을 얼마나 촘촘하고 멋지게 엮었는지 마치 기관총 사수가 지나가는 것 같다. 가벼운 셔츠와 청바지 차림에 군화를 신고 모자를 쓴 모습은 여느 젊은이들과 다르지 않지만, 이 청년에게는 뭔가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물건을 팔러 나온 건 분명한데 마늘이나 양파를 사라고 외치지 않는다. 전장에 나가는 병사처럼 묵묵하게 지나갈 뿐이다. 물론 길가에 나와 앉은 아낙들과 눈을 맞추는 법도 없다. 어느 땐 그에게서 먼 길을 떠나는 고행자의 고뇌를 읽는다.

마늘장수 청년의 뒷모습

저 마늘과 양파가 과연 파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누가 사는 걸 본 적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심지어 쿠바 사람들이 마늘과 양파를 먹기나 하는 걸까 의심스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청년은 아침마다 어김없이 나타나고 나는 습관처럼 시선을 빼앗긴다. 저 청년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길을 걷고 있을까.

다른 글에서도 밝혔지만, 50년 이상 뿌리 내런 사회주의 체제에 ‘학습되지 않은 자본주의’가 급속하게 침투하고 있는 쿠바의 청년들은 극심한 혼돈 속에 있다. 돈을 벌어야 하는 건 분명한데 일거리가 없다. 그렇다고 국가에서 일자리를 하나씩 나눠주는 것도 아니다. 산업이라고는 관광과 사탕수수농사가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나라다보니 일자리 창출에 한계가 있다. 현지에서 들을 말로는 쿠바 청년 중 150만 명이 직업이 없다고 한다. 쿠바 인구가 1170만 명 정도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높은 비율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100만 청년백수’는 거기에 비하면 행복한 비명이다.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가게. 상품이 거의 없다

마늘장수 청년을 바라보면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 청년이야말로 그런 현실을 증명하기 위해 아침마다 등장하는 것은 아닐까? 주어진 배역을 충실히 연기하는 게 아닐까? 그런 아침이면 자꾸 내 나라의 청년들이 생각나는 것 역시 뼛속 깊이 자리 잡은 지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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