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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교육, 스웨덴의 성교육

“최소한 1미터야.”

“만원버스에서는요?”

“……어떤 상황에서든 최대한 먼 거리를 유지하도록!”

중학교 때 남자 도덕 선생님의 훈육이었다. 교복을 단정히 입은 여중생들은 과학시간과 가정시간에 남자의 몸과 여자의 몸이 성장하면서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배운 뒤에, 늑대로 상징되는 남자들로부터 얼마나 거리를 두고 남자와의 접촉은 어떻게 피해야 하는지 배웠다. 거기에 만약 나쁜 일을 당해 몸을 망치면 여자는 시집도 못 간다는 위협을 받았다.

이것이 30여 년 전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받은 ‘후진’ 성교육이었다. 이후 고등학교 때에는 ‘성’에 관해서 특별히 더 배운 것이 없었고, 나는 더 가르쳐 주지 않아도 나 혼자 소설을 통한 상상으로 모두 터득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보다 좀 덜 자라 보였던 반 친구들에게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어젯밤에 딱 한 번 읽고 기적처럼 다 외운 ‘어른소설의 핵심적인 내용’을 줄줄 읊어 주었다.

내 주변에는 반 친구들이 꽤 많이 몰려 들었는데, 당연한 일이었다. 호기심 많은 청소년들에게 너무나 흥미로운 미지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 방면에 박사쯤으로 통했고, 밝히기 부끄러운 별명도 하나 얻었다. 다만, 물개의 정력이 얼마나 센지에 대한 생물선생님의 적나라한 묘사를 들은 뒤에, 나는 상상만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어떤 경지가 있음을 깨닫고 조용히 머리를 숙인 적이 있다.

그런데 나는 알고 있었다. 방과후에 치마를 짧게 말아 올린 뒤 야간자율학습을 빼먹고 몰래 달아나는 펑키 머리의 몇몇 아이들은 겉으로 떠들썩한 나와 차원이 다른 무엇인가를 실제로 알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중에 씁쓸한 사실도 하나 더 알게 되었다. 내 주변에 몰려와 ‘어른소설의 핵심적인 내용’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듣던 반 친구들도 모두 나만큼은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다만 떠들었을 뿐!

30여년 전 이야기이니 무척 진부하다. 그러나 최근에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행해지는 성교육 프로그램을 살펴 본 결과, 모양새는 크게 발전한 듯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내가 받았던 성교육과 그리 큰 차이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스웨덴의 성교육과는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다. 30년이란 시간 차이보다, 같은 시대의 스웨덴과 한국이라는 공간 차이가 더 크다는 사실이 좀 놀라웠다. 우리가 세계화를 부르짖은 지가 도대체 언제부터인가?

내가 살펴본 현행 한국 고등학교 성교육 프로그램의 핵심 내용은 두 가지이다. 첫 째, 성관계를 피하면서 어떻게 건전한 이성교제를 할 것인가? 둘 째, 성폭행을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여기에 덧붙여 임신과 성매개 감염병에 대한 무시무시한 경고와 책임의식을 한껏 강조한 뒤 알려주는 피임 정보가 있다.

이렇게 한국의 성교육 프로그램에는 10대는 성관계를 갖지 말아야 하고, 만약 가졌을 경우에 그것은 ‘불행한 사고’라는 전제가 암묵적으로 깔려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성교육 프로그램의 대상을 주로 여학생으로 상정해 놓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성관계 이후 오직 여자에게만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한 ‘친절한 배려’로 보인다. 고맙기 짝이 없다!

그렇다면 스웨덴의 성교육은 어떠한가?

두 나라의 성교육은 남자의 몸과 여자의 몸이 성장하면서 생물학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배우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점을 빼면, 그 이후 성을 다루는 태도는 ‘완전히’ 다르다.

한국에서 이런 상황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어느 불타는 금요일 저녁, 엄마와 아빠 그리고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16세의 딸과 딸보다 2살 더 많은 18세의 딸의 남자 친구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다. 밤 10시, 지루한 다큐 프로그램이 시작되자 딸은 하품을 하더니, “우린 자러 갈게요. 엄마 아빠 안녕히 주무세요”라며 인사를 한 뒤 남자 친구와 손을 잡고 다정하게 이층 자기 방으로 올라간다.

스웨덴에서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16세 딸을 둔 스웨덴인 친구에게 물어 보았다. “네 딸이 그러면?” “내가 막는다고 그 애들이 안 하겠어? 자동차 안이나 어디 공원 같은 데서 하느니 차라리 안전하게 피임도구 써가며 자기 침대에서 하는 게 낫지. 권장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막을 이유도 없고!”

이 쿨한 엄마에게 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니 춘향이와 이도령 그리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나이가 몇 살이던가? 이팔청춘 16세의 나이에 그들은 알아야 할 것을 다 알았고, 로맨틱한 사랑의 전형이 되었다.

비교하자면, 한국의 성교육은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춘향이와 이도령에게 “공부해서 대학가야 할 이 중차대한 시기에 이성친구를 사귀다니 정신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라는 유감스러운 눈치를 준 뒤, 이성친구가 없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어쩌다 생겼다면 공부에 방해 받지 않으면서 어떻게 건전한 이성교제를 할 수 있는지 충고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반면, 스웨덴의 성교육은 로미오와 줄리엣에게 어떻게 하면 즐겁고 안전하게 사랑의 행위를 할 수 있는지 충고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성교육의 출발은 같았으나 그 목적지는 정반대인 셈이다.

청소년기에 스웨덴식 성교육을 받고 싶었던 나는 그 한을 중년 아줌마가 되어 풀게 되었다. 깊은 겨울 밤 10시, 졸린 눈으로 육개장이 다 끓기를 기다리면서 TV 리모컨을 돌리다가 우연히 만화영화 한 편을 보게 되었다. 아! 잠이 확 달아났다.

수학 보충수업을 위해 다섯 명의 학생이 모여있는 어느 고등학교 도서관! 수학 선생님은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오지 못하고 대타 선생님이 들어왔다. 늘 대타가 문제다. 선생님이 들어오기 직전 아이들 사이에서 성기 모양의 나비가 두 마리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그 대타 선생님은 수학보다 인생에 훨씬 더 도움이 되고 중요한 나비에 대해 공부하자고 제안한다.

28분짜리 손으로 그린 이 만화 영화는 1933년에 설립된 스웨덴 성교육연합과 스웨덴 교육방송국에 의해 14세에서 17세 사이의 청소년을 겨냥해서 2011년도에 만들어졌다. 그런데 한국에서라면 미성년자 ‘절대’ 관람불가이다. 스웨덴의 성교육은 말 그대로 정직하게 성교육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본 어떤 미국인의 감탄사! “아! 내가 몇 년 걸려 알게 된 사실이 28분짜리 영화 속에 다 들어있다니!” 이 영화를 본 나의 감탄사! “늘 배움의 자세를 잃지 말아야겠군!”

이 영화의 장점은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일방적으로 알려주고 싶은 것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청소년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을 알려 준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청소년들이 스웨덴 성교육연합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코너에 보낸 질문들과 그에 대한 답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선생님은 남녀의 신체가 어떻게 다른지 적나라하게 확대해서 보여 주고 기능과 명칭을 일일이 알려 준다. 성적으로 흥분하면 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설명하고, 오르가즘은 따뜻한 파도가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듯 짜릿하게 즐겁고 행복한 느낌이라고 일러준다.

심지어 이런 저런 자위행위에 대해서는 ‘늑대와 춤을’이나 ‘주먹 쥐고 일어서’ 같은 인디언 이름처럼 아이들에게 이름을 붙여 보게 한다. 또 어떤 성행위 체위들이 있는지 아이들에게 브레인스톰식으로 발표하게 하고, 그 다양한 체위들을 ‘섹스 지도’를 만들어 그려 넣는다. 이러한 구술 및 시청각 교육 이외에 영화에는 서로에게 끌리는 한 소년과 소녀가 어색하게 애무하며 시도하는 첫 성경험 이야기와 여학생에게 끌리는 여학생 이야기가 사이드 스토리로 등장한다.

아이들은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아요?”라는 질문을 포함해서 성에 관해 무엇이든 묻고, 선생님은 진지하고 솔직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대답한다. 마치 테니스를 배우는데 더 재미있게, 더 잘 할 수 있는 기술을 알려주는 것 같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아이들이 수학공부를 했어야 했다고 생각하며 심호흡을 여러 번 했으나, 이 영화가 성교육 전문가들에게는 큰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영화 마지막에서 대타 선생님은 임신과 성매개 감염병을 피하는 방법을 알려준 뒤, “너희를 보호해 주는 건 사랑이 아니고 콘돔이란다!”는 말을 남기고 나비와 더불어 홀연 사라진다.

영화 한 편으로 스웨덴 성교육을 다 이해했다고 볼 수 없어서 나는 고등학교에서 성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을 소개받아 인터뷰를 했다. 선생님은 자신이 교재로 사용하는 자료들을 내게 보여 주었는데, 수업 내용은 영화 내용과 대동소이했다. 한국에서의 10대의 성경험은 ‘없어야 했는데 발생한 불행한 사고’인 반면, 스웨덴에서의 10대의 성경험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당연한 일’ 그리고 ‘삶의 한 부분’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선생님들이 수업 중에 가장 강조하는 점은 어떤 경우든 성적인 접촉시에는 반드시 ‘서로 동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님들의 또 다른 중요한 과제는, 스웨덴에서 합법적으로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는 나이인 16세가 되면(15세 미만은 불법),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첫 경험을 하기 때문에 이들을 임신과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어차피 다 알게 될 것이고 죄짓는 일도 아닌데 청소년들에게 성에 대해 숨길 이유가 있나요?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인터넷으로 과장되고 비정상적인 동영상을 보는 건 아주 위험한 일이에요. 차라리 투명하게 뭐든 알려 주는 편이 성에 대한 왜곡된 환상을 거두는 지름길이죠.”

이것이 내가 인터뷰한 선생님의 지론이었다. 옳은 말이긴 하지만, ‘너무나, 지나치게, 넘치게, 과도하게’ 빨리 뛰어가는 스웨덴의 성교육에 아무런 저항 없이 따라가기엔 나의 체력이 ‘너무나’ 달린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곧 만 15세가 된다는 사실에 갑자기 아득해졌다!

다음은 교실에서 내가 직접 들은 선생님과 학생의 대화!

“100% 안전한 피임법은 없단다!”

“콘돔을 한꺼번에 세 개 쓰면요?”

“아! 그건 마찰이 일어나기 때문에 더 위험해.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 돼. 알겠지?”

체력이 달리고 아득하긴 하나, 한국에서 태어난 게 몹시 억울하게 느껴진 순간이었다고 말하면 나의 솔직함이 너무 드러나게 될 테니 그 말은 하지 않겠다!

나승위  swnah201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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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승위 / 작가 swnah2013@gmail.com
작가 스웨덴 말뫼 거주
저서 : 삐삐와 닐스의 나라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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