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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산티아고 순례길 14] 겨울 까미노에서 잠들다

캬! 드디어 까미노에서 노숙을 했습니다. 오늘 일정 가운데 대도시 부르고스에는 까미노에서 시설이 제일 좋다는 멋진 공립 알베르게가 있었는데 너무 일찍 도착해 해가 아깝고 발 컨디션이 좋아 조금 더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대도시의 번잡함이 내키지도 않았구요. 부르고스에 비하면 토론토는 도시도 아닙니다.

그리고 다시 떠난 길, 마을 몇 개를 지나고 해가 지는데 아뿔사, 알베르게가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시골이라 동네에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없구요. 설사 사람들이 있다 해도 내가 재워달라는 말을 쉽게 할 성격도 아니죠.

어쩔 수 없이 노숙할 자리를 찾다가 성당 담벼락에 자리를 잡는데 바닥도 돌이고 바람막이도 없습니다. 그래서 마을을 조금 둘러보니 남의 집 마당이지만 지붕이 있는 통로가 있습니다. 또 주변에 나무 박스 같은 것이 있어 가져다 자리를 잡으니 그럴듯하네요.

해 뜰 때부터 걸었느니 11시간은 걸었고 오늘도 40km는 움직인 듯합니다. 종일 씩씩하게 걸어준 다리가 고맙습니다.

길이 있으니 참 좋습니다. 걸을 수 있으니까요.
밝은 낮이 있으니 참 좋습니다.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밤이 오니 참 좋습니다. 멈출 수 있으니까요.

이 겨울에 노숙이라, 비가 오지 않아 다행이지만 어쩔지 모르겠어요. 이 글을 쓸 수 있다면 무사히 노숙을 했겠지요. 종일 땀 흘리고 씻지도 못하고 아침에 빵 한 조각 먹고 먹은 것이 없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내가 까미노를 그냥 걸을 리가 없지요. 꼭 사고를 칩니다. 홀로여서 다행입니다.

누가 있었으면 이렇게 걸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겠지요. 나랑 친하게 같이 다니지 마세요. 이런 일 당합니다요. 나는 위험한 사람입니다. 물론 그래서 같이 있으면 더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되겠지만 말입니다.

이제 여덟시도 안되었으니 시간이 너무 많이 남네요. 하루가 이리 깁니다. 오늘 하루 황홀한 여명부터 화려한 일몰까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남은 시간 모두를 위해 기도하고 깊은 명상에 들겠습니다. 모두들 굿나잇!

"그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는 눈이 열리고 그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며 성급한 자들도 진리를 깨달을 것이며 말을 더듬는 자들도 분명하게 말할 것이다. 그 때에는 어리석은 자나 사기꾼과 같은 건달들을 아무도 영웅시하지 않을 것이다."(이사야 32:3-5)

주여, 어리석은 자들과 사기꾼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저들이 진리를 깨닫고 분명하게 말하게 하소서.

(20151210 #산티아고 14일 474.km 아헤스 - 라베 데 라스 칼짜다스)

오동성  eastsain@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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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성 eastsain@chol.com
목사, 2004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해 목회와 공동체 일을 해왔고 지금은 토론토의 한인 양로원에서 어르신들의 노년을 섬기며 여행과 명상, 일상생활을 통해 길 위에서 하늘을 보고 나를 찾아가는 안내를 하며,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세월호를 기억하는 토론토 사람들>과 함께 유가족과 연대하여 세월호 진상규명과 그를 통한 안전한 사회를 세우는 일에 힘을 다하고 있다.
· 저서 : 지금 여기 그리고 당신과 함께, 다른 우리
· 역서 : 칼릴 지브란 예언자, 나마스테
https://www.facebook.com/easts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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