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9.1.18 금 17:26 ㆍ 구독 Subscribe Now
상단여백
HOME 연재 여행
[한겨울 산티아고 순례길 13] 다정하게 바라보기

발병의 소리를 주의 깊게 들으며 하루 푹 쉬어주고 다시 시작하는 까미노입니다. 오늘도 30km 가까운 여정이라 해뜨기 전에 출발해 손전등에 의지해 걸음을 옮깁니다. 전날 밤새 이슬비가 오시더니 다행히 비는 그치고 날이 조금씩 개네요. 걷고 싶어 온 길이니 걸음을 즐깁니다.

삶이 그렇듯 까미노도 어느 순간 얼마를 걸었는지, 몇 시간이 남았는지 계산하기 시작하면 길은 지옥이 되고 말지요. 지금 걷는 걸음이 축복이고 은혜이고 기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지금이 천국이고 주와 동행하고 있는 시간인 것이지요. 하루를 쉬어준 덕에 발의 물집이 안정되어 걸음도 편안합니다. 그래도 20km를 넘을 즈음 무리가 오기 시작하네요. 그 때 마다 앉고 눕고 쉬면서 딩가딩가, 여유를 즐깁니다. 구름에 달 가듯이요. 잘 쉬는 것도 순례라는 말씀이 오래 남아 있습니다.

벨로라도에서 아헤스로 가는 길, 끝없이 이어지는 소나무 숲이 장관입니다. 편안하고 고요한 숲길에 몸도 마음도 쉼을 얻습니다. 지금을 놓치지 않는 순례자만이 누리는 기쁨이지요.

걸음이 날 인도합니다. 이렇게 가는 길에 쉴 그늘이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합니다. 나도 길 가는 이들에게 쉴 그늘이 되어주자 마음을 먹습니다. 그가 걷는 나를 지켜보고 내가 나를 바라보고 격려하며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 안에 그가 내 안에 있습니다.

오늘은 초점을 "다정하게 바라보기"로 정하고 길을 걸었습니다.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삶의 실력이지요. 그리고 내가 그렇게 바라보기로 결정합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인데 걱정과 근심과 원망과 질투의 종노릇하며 내 길을 놓칠 수가 없는 거지요.

웃어 봅니다.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순간 그것도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봅니다.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하며 햇살이 들고 소나무 숲을 지나 아헤스로 들어서는 고원은 사방이 탁 트여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옅은 구름과 함께 맞이한 일몰은 이렇게 황홀했습니다.

다정하게 바라보니 의식 수준이 올라갑니다. Looking deeply(깊이 바라봄)입니다. 잘 보고자 하는 거지요. 눈에 보이는 껍데기가 아니라 그 마음까지 봅니다. 사람의 행동과 겉모습만이 아니라 그 깊은 곳의 마음, 내면에 접촉해 봅니다. 들숨 날숨 알아차리며 한 번 더 봅니다.

순례자입니다. 까미노는 다정하게 바라보는 길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아직도 너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며 너희에게 사랑을 베푸시려고 하신다. 여호와는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너희를 불쌍히 여기실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 있는 자이다."(이사야 30:18)

지금 "나(I AM)"에게로 돌아갑니다. 기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20151209 #산티아고 13일 511.1km 벨로라도 - 아헤스)

오동성  eastsain@chol.com

<저작권자 © 미디어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동성 eastsain@chol.com
목사, 2004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해 목회와 공동체 일을 해왔고 지금은 토론토의 한인 양로원에서 어르신들의 노년을 섬기며 여행과 명상, 일상생활을 통해 길 위에서 하늘을 보고 나를 찾아가는 안내를 하며,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세월호를 기억하는 토론토 사람들>과 함께 유가족과 연대하여 세월호 진상규명과 그를 통한 안전한 사회를 세우는 일에 힘을 다하고 있다.
· 저서 : 지금 여기 그리고 당신과 함께, 다른 우리
· 역서 : 칼릴 지브란 예언자, 나마스테
https://www.facebook.com/eastsain

오동성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