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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산티아고 순례길 12] 까미노는 고독이고 만남이다

산티아고 가는 길, 까미노에 있는 작은 마을 벨로라도가 밝았습니다. 하루 밤을 같이 보낸 순례자들은 날이 밝기 전에 모두 길을 떠나고 여기 홀로 밝아 온 아침을 맞습니다.

낯선 스페인 마을에서 길을 잠시 멈추고 오롯이 홀로입니다. '절대 고독'이라는 말을 합니다. 옛 성인들과 은자들이 추구했던 영적 혹은 정신적 상태를 말하지요.

절대고독은 그 무엇이 없이 또 그 무엇도 있는, 그래서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헨리 나우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우리의 혼자 있음을 외로움(loneliness)이 되게 내버려두느냐, 또는 그것이 우리를 고독(solitude)으로 인도하도록 허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혼자 있음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고독은 평화스러운 일입니다. 혼자 있음은 우리로 하여금 절망 속에서 남에게 매달리게 하고, 고독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의 존재의 독특성을 존경하게 하고 공동체를 만들어 내게 합니다. 우리의 혼자 있음을 외로움이 되지 않게 하고 고독으로 성장하게 하는 일은 평생에 걸친 싸움입니다. 이 싸움을 위해서는 누구와 함께 있을 것인지, 무엇을 공부할 것인지, 어떻게 기도할 것인지, 그리고 언제 조언을 구할 것인지에 관하여 의식적인 선택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현명한 선택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이 사랑 속에서 자랄 수 있는 고독을 찾게 될 것입니다."

자기 혼자 제대로 서지 못하는 사람은 함께하는 조직이나 공동체 안에서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부부나 연인도 그렇지요. 홀로 충분히 성장하고 행복하지 못하면 함께하는 관계도 그렇게 만들기 쉽습니다. 그러니 사람은 늘 홀로이고 그래서 또 함께입니다.

우리 삶은 그런 홀로를 배우는 까미노입니다.

까미노는 참 신비한 곳입니다. 절대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길에서 만나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배려하고 염려해 줍니다. 사람 냄새가 나는 거지요. 또 '벗었으나 부끄러움이 없는' 상태와 관계가 어느 순간은 되어집니다.

산티아고로 가는 까미노에서 첫 만남은 무거운 성경책을 배낭에 넣어 기독교 순례길까지 들고 온 불교신자 청년이었습니다. 길에서 명상에 드는 것을 보아 범상하지 않았고 그 역시 영적 순례의 여정에 있어서 말과 경험이 통했습니다. 까미노가 아니었으면 서로 인사를 나누고 고민과 길을 쉽게 물을 수가 없었겠지요.

이번 여행길에서 내가 만난 플럼 빌리지 이야기와 때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공감했습니다.그는 길에서 홀로 시간을 더 보내고 싶다고 훌쩍 앞서 갔는데 까미노를 일찍 마치고 플럼 빌리지와 떼제 공동체에 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찾는 그것을 길 위에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까미노에서 두 번째 만남은 사회주의를 꿈꾸는 아티스트였습니다. 내가 그런 삶을 살아왔기에 우리는 한동안 지나온 삶을 이야기로 나누는 것만으로 벅찼습니다. 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를 하며 우리가 살았던 삶의 치열함과 순수함, 헌신과 패기에 눈물겨웠습니다.

참 착하고 순수한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리 살 수 없는 거지요. 이렇게 살아온 남은 사람들, 우리 시대의 '그루터기'입니다. 이런 이들을 보면 미안하고 눈물이 납니다.

내가 아프고 죄의식이 있습니다. 지금 또 다시 되풀이 되는 우리 사회의 악몽에 얼마나 아프고 넌더리가 날까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녀가 자기 전공을 찾아 살고 싶은 삶을 기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20년도 더 된 지나간 시간들을 지나 우리가 까미노에서 만나다니요. 그녀는 잘 모르겠지만 까미노와 참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삶의 여정이 그토록 치열했고 아름다웠으니까요.

까미노의 고통과 축복이 길의 진리로 그녀에게 드러나길 빌어줍니다. 자기가 모르는 일들이 진리를 추구하는 삶의 한가운데 그렇게 드러나고 만나지게 되는 거지요.

지금 삶의 자리를 잠시 떠나 자기를 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난 안심이고 든든합니다.

우리가 왜 운동을 하고 혁명을 꿈꾸었을까? 난 사랑이 이끄는 힘이라 생각합니다. 그 모든 것이 사람을 사랑하고 생각하는 마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 어떤 거창한 이데올로기나 아름다운 유토피아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니까요.

그 사랑이 우리 삶을 이끌어 여기까지 왔듯이 앞으로도 이끌어줄 것으로 믿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고 존중받고 인정받는 세상, 그것은 그렇게 살아가는 순간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이고 우리가 할 일은 그런 순간을 오래오래 유지하고 이어가는 것이지요.

삶에 깨어 있고 나에게 깨어 있는 길뿐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이끄는 대로 사는 거구요.

그렇게 만난 그녀도 열흘간의 짧은 동행 후 발이 아픈 나를 홀로 남겨두고 떠나갔습니다.

이제 남은 30일은 또 누구를 어떻게 만나게 될까요? 까미노는 살아가면서 절대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게 합니다. 길이 그렇습니다. 만나고 헤어지는 삶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시한부입니다. 길고 짧음이 있을 뿐이지요.

그러니 함께이고 같이 있을 때 후회 없이 충분히 누리고 마음껏 주고받고 사랑하며 살아야지요.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원망하지 말구요. 사실은 그 밑마음은 사랑하고 사랑 받고 싶은 것이니 말입니다.

까미노는 고독이고 만남입니다.

"머지않아 울창한 숲이 농토가 되고 농토가 다시 숲이 될 것이다."(이사야 29:17)

우리 삶이 그러합니다.

(20151208 #산티아고 12일 538.8km 벨로라도)

오동성  eastsain@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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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성 eastsain@chol.com
목사, 2004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해 목회와 공동체 일을 해왔고 지금은 토론토의 한인 양로원에서 어르신들의 노년을 섬기며 여행과 명상, 일상생활을 통해 길 위에서 하늘을 보고 나를 찾아가는 안내를 하며,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세월호를 기억하는 토론토 사람들>과 함께 유가족과 연대하여 세월호 진상규명과 그를 통한 안전한 사회를 세우는 일에 힘을 다하고 있다.
· 저서 : 지금 여기 그리고 당신과 함께, 다른 우리
· 역서 : 칼릴 지브란 예언자, 나마스테
https://www.facebook.com/easts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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