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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산티아고 순례길 11] 길의 소리를 듣다

오늘은 내 페이스를 따라 천천히 조금만 걷자 마음먹었는데 알베르게를 찾을 수 없어 또 무리를 했습니다. 하지만 쉬엄쉬엄 걸어도 점심을 위해 레스토랑에 들르지 않고 길거리에서 행동식(미숫가루와 건빵)을 했더니 다행히 다른 일행들보다 1시간 정도만 뒤처져 목적지에 도착했네요.

토끼와 거북이입니다. 중간에 알베르게를 찾다가는 쉴 수 없을 것 같아 내일은 길 위에 서지 말고 이곳 벨로라도 알베르게에서 하루를 더 있어보면서 발 상태를 봐야겠습니다.

발의 소리도 잘 듣고 하려구요. 길에만 서면 본능적으로 가려고만 하니 말입니다.

건성 건성이 아니라 '주의 깊게 듣기'라고 했습니다. 주의 깊게 들으면 들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까미노에서도 주의 깊게 들으니 새소리가 있고 바람 소리가 있고 발자국 소리가 있고 물소리가 있습니다.

왜 그 전에는 들리지 않았는지 모를 정도지요. 그리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내 마음의 소리도 들립니다. 내 피를 돌리는 심장 소리도 들리고 걸음을 지탱해 주는 내 발의 소리도 들리고 이사야서를 읽으며 마주하는 이 땅 백성들이 신음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플럼 빌리지에서는 ‘listen carefully(조심스레 듣기)’ 혹은 ‘listen deeply(깊이 듣기)’라고 하고, 옛 어른들은 ‘경청’, 하비람 수련에서는 '잘 듣고 합니다'라고 합니다. 이제 까미노에서 열흘을 보내며 그 고비에 몸과 마음이 수축되려 하고 있습니다.

위기이고 고비입니다.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그런 거지요. 위기를 기회로 고비를 성장으로 삼아야지요.

그런 소리를 잘 듣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정말 하고 싶고 가고 싶은 방향으로 내 길을 결정합니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인정하고 인정받고 싶은데 미워하고 투정하고 있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랑하면 됩니다. 그렇게 잘 듣고 분별하며 살아야지요.

길이 그렇습니다. 구부러지기도 하고 똑바르기도 하고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고 풀밭도 있고 돌밭도 있고 흙길도 있습니다.

가만히 멈추어 그 길의 소리를 주의 깊게 들어봅니다.

오늘도 이렇게 여전한 안개 속의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어떤 하루일까요?

(20151207 #산티아고 11일 538.8km 산토 도밍고 - 벨로라도)

오동성  eastsain@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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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성 eastsain@chol.com
목사, 2004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해 목회와 공동체 일을 해왔고 지금은 토론토의 한인 양로원에서 어르신들의 노년을 섬기며 여행과 명상, 일상생활을 통해 길 위에서 하늘을 보고 나를 찾아가는 안내를 하며,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세월호를 기억하는 토론토 사람들>과 함께 유가족과 연대하여 세월호 진상규명과 그를 통한 안전한 사회를 세우는 일에 힘을 다하고 있다.
· 저서 : 지금 여기 그리고 당신과 함께, 다른 우리
· 역서 : 칼릴 지브란 예언자, 나마스테
https://www.facebook.com/easts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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