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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운수 해고정비사 이병삼씨를 만나다

지난해 12월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방학을 이용해 한국을 3주 동안 방문했다. 한국의 겨울에는 나라의 상황을 닮은 매서운 바람이 있었고, 그리운 사람들을 만날 때는 양지 볕에 눈이 녹는 포근한 봄날 같기도 했다.

영하 9도의 추위가 있던 날, 데모당 이은탁 당수가 아침 7시마다 신림역 앞에서 벌이는 일인시위에 동참했다.

《불온한 상상》의 저자이자 2013년 페이스북에 '데모당'을 만들어 당수로 활동하고 이은탁씨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에 신림역 앞에서 일인시위를 한 시간 동안 한 뒤 집회가 열리는 장소로 이동하며 연대를 하고 있다.

해가 뜨기도 전에 신림역 앞에서 이은탁 당수와 《충정도의 힘》을 쓴 남덕현 작가와 만나 ‘비정규직 철폐,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박근혜 퇴진’등의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출근길로 바쁜 사람들이 눈길조차 주지 않고 급하게 지하도로 빠져나가는 뒷모습에서 녹록치 않은 삶의 무게를 읽을 수 있었다.

단단하게 옷을 입고 나왔지만 서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추위가 뼈 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도 모르게 부르르 떨며 “추워” 소리가 절로 나왔다. 슬그머니 보니 이은탁 당수와 남덕현 작가는 의연하게 서있었다. 왜 내가 동참하겠다고 했는지 후회가 들만큼 온 몸이 얼 무렵, 이은탁 당수가 8시라며 종료를 알렸다. 추위를 이겨 낸 스스로가 자랑스러워 바로 한남운수로 이동하자는 말에 선뜻 따라나섰다.

버스를 타고 한남운수에 도착하니 대학동차고지 입구에서 부당해고에 항의하는 십여 명의 해고 노동자들이 시위를 하고 있었다. 동참하여 시위를 끝내고는 사무실에서 아침식사를 함께 했다. 전기장판 위에 앉아 콩나물김치국과 몇 가지 밑반찬으로 식사를 하는데 몸의 추위는 녹는데 마음은 시큰했다. 상도 없이 불편하게 식사를 하는 해고노동자들. 지칠 법도 한데 그들은 웃음꽃을 피우며 정담을 나눴다. 밥상의 따스함을 꼭꼭 담듯이 먹으면서 버스 정비 25년 경력의 한남운수 해고정비사 이병삼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2010년 10월 한남운수에서 해고당한 이병삼씨는 부당해고 반대 및 복직을 위해 천막농성, 집회, 선전전을 통해 투쟁해오고 있다.

전남 무안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이병삼씨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광명시의 카센터에서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6개월 동안 숙식을 하며 일했지만 월급을 받지 못했다. 운수회사로 옮겨 정비사로 일했고 2002년부터 한남운수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그는 성실하게 일한 덕분에 능력을 인정받아 회사 평가에서 1등을 하기도 했다. 그의 인생에 변화가 찾아온 것은 2008년 한남운수가 부도를 내면서부터였다. 2009년 부도 회사를 인수한 박복규 대표이사는 정비노동자 감축, 임금 15% 삭감, 연봉제 도입, 1년 계약직 비정규직화 등 구조조정을 일방통행으로 진행했다.

이병삼씨는 2010년 부당해고를 당했다. 회사 측은 정비 업무만 해온 그를 운전직으로 발령냈다. 하지만 대형면허를 취득한지 두 달도 안됐던 그는 미숙한 운전보다는 이제까지 해온 정비사 일을 계속하고 싶다며 거부했다. 결국 그의 거부는 해고 사유가 되었다. 이병삼씨와 같은 이유로 해고당한 동료들은 부당 해고로 민사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했지만, 2심과 3심에서는 패소했다.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2012년 7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버스지부 버스정비사지회 설립을 하고, 2014년 10월부터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긴 투쟁으로 인한 경제적 압박으로 고통을 받았지만 현장 동료들이 기금을 마련해주는 등의 도움으로 7년째 투쟁을 해오고 있다.

내가 찾아갔던 날의 집회는 한남운수 대표와의 면담촉구 집회로 몇 달째 이어오는 것이지만 한남운수 회장과 대표는 3개월 전부터 출근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서울시는 매달 수천만 원의 월급을 지급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해고자들에게 회사 대표와 면담을 해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 답이 없다.

이병삼 노동자

이병삼 씨와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된 점은, 서울시의 버스준공제에 의해 버스 운전직 임금은 노사의 합의에 따라 이뤄지고, 정비직 노동자와 관리직 노동자 임금은 서울시의 표준운송원가에 따라 버스업체에 지급할 뿐 제대로 지급이 되고 있는지 확인을 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이런 허점을 이용해 버스업체는 노동자의 임금을 임원 인건비로 지급하는 등 제도를 악용하고 있었다.

서울시내버스를 준공제로 바꾼 것은 이명박 시장 때인 1994년이었다. 이 제도는 세금으로 버스회사 이익을 보장해줬지만, 버스업체 노동자를 정리해고 하는데 이용되어 기사만 7000명이 해고되었다. 그리고 정비노동자는 근속에 따른 임금 지급 대신 연봉제란 이름으로 비정규직화 되었다.

한남운수의 박복규 대표이사는 근속연수가 많은 정비사들을 운전사로 돌려 실제 지급한 돈을 세금으로 받는 실비정산으로 했고, 신입정비사들을 비정규직 연봉제 계약을 해서 최저임금으로 고용했다. 또 버스 1대당 정비사 0.1458명 + 1명(관리)을 둬야 한다. 이에 따라 한남운수의 경우 버스 158대를 운행하니 158 X 0.1458명=23명이다. 거기에 관리 1명을 포함하면 24명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비사를 12명으로 줄여 나머지 임금(서울시 세금)을 착복하고 있다.

이런 불의를 알게 된 이병삼씨는 국민의 세금을 착취한 악덕기업가와의 싸움은 물론, 시민의 안전문제·서울의 버스 준공제의 구조적문제와도 투쟁하고 있는 중이다. 12명의 정비사만으로는 버스 점검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안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대화의 마지막은 집회를 대하는 주민들의 반응에 관한 것이었다. 매일 오전 8시에 ‘임을 위한 행진곡’등 음악을 틀고, 마이크를 이용해 자유발언을 할 때면 주변의 주민들이 소음 신고를 해서 경찰들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시위·파업의 나라로 불릴 정도로 집회와 파업이 자주 있지만 시민들이 불평을 하지 않는다. 집회·파업의 자유는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대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침마다 소음에 시달려 불편하다면 주민들은 한남운수의 해고노동자들에게 불평할 것이 아니라, 서울시와 한남운수에 빨리 문제를 해결하라고 독촉해야만 한다. 이것 또한 연대이다.

이병삼씨와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오다가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들의 빠른 복직을 기원했다.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으면서 버티고 있고, 악덕 기업주들은 노동자를 착취하며 탄압하고 있는 현실에 마음이 아득했다. 힘차게 날아가는 새 몇 마리가, 투쟁과 연대가 있는 곳에 희망이 있다고 가르쳐주는 것 같았다. 더욱 견고한 연대로 권력과 자본에 맞서기를 소망하는 아침이었다.

조미진  mijin6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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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진 mijin68@gmail.com
실수쟁이로 삶에 서툴지만, 사람을 좋아하며 노마드처럼 살기를…이방인으로 사는 것을 사랑하며 바람이 부르는 대로 살려고 한다.
저서<프랑스에서 한국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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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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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음이라... 2017-02-19 01:42:16

    도시에선 소음 문제가 심하긴 하죠. 외국의 특정 사례 들고 오면서 주장을 뒷받침하려고 하시는데, 미국 내 다수 주에서는 허가 없이 스피커, 확성기 사용이 제재된답니다. 일부 사례만 가지고 선동하려고 드는 게 보기 좋진 않네요.   삭제

    • 논리갑 납셨소 2017-02-16 12:49:20

      소음에 시달리지 않을 것도 정당한 권리인데, 이걸 침해당하기 싫으면 협력을 하라니... 캬 논리에 취한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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