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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 그렇게는 안하더라

조금 생뚱맞기는 하지만 오늘은 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제 집의 강아지들은 짖을 때와 짖지 말아야 할 때를 정확하게 구분합니다. 예를 들어 밤 12시 넘어서 집에 들어가면 반가운 표시만 할 뿐 절대 짖지 않습니다. 낮에는 10분만 나갔다 들어와도 반갑다고 극성을 떠는 녀석들이 말입니다.

참 신기한 일이지요? 강아지들은 사람이 잠드는 시간을, 잠든 사람을 깨우면 안 되는 시간을 어떻게 알까요? 시계를 볼 줄 아는 것도 아닌데. 물론 훈련을 시킨 적도 없습니다. 아무튼 개들이 그럴 때마다, 말을 할 때와 입을 다물 때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을 합니다. 또, 개들은 한 번 그렇게 정해지면 상황이 바뀌어도 절대 거짓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왜 느닷없이 개 이야기를 꺼내느냐고요? 가끔 사람이 개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니, 요즘은 자주 들어서요. 나서야 할 때와 나서지 않을 때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선 그렇습니다. 새빨간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벌어진 뒤 참 다양한 인간군상을 봅니다. 인간 심성의 바닥이 어딘지 확실하게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TV로 중계되는 국회 청문회를 보면서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싶어서 기가 막혔던 사람이 저 혼자만은 아닐 겁니다. 몇 번씩 주먹을 쥐고 흔든 국민도 많을 겁니다. 뻔히 드러날 것도 일단 잡아떼고 보는 증인들. 한때는 비서실장이나 장관 같은 높은 자리에 있었고 국민의 세금으로 등 따습고 배부르게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박사모 등으로 구성된 소위 ‘탄기국(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 총궐기 운동본부)’가 주최하는 탄핵 반대 시위 현장에 가보면 인간의 본성에 대해 더욱 의심이 커집니다. 대통령의 명백한 잘못에도 무조건 편드는 것 정도는 그러려니 할 수 있겠는데, 구호를 보면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빨갱이’ 같은 단어는 그렇다고 쳐도 ‘계엄령을 선포하라’는 말까지 난무합니다. 계엄령을 선포해서 누구를 어떻게 하라는 건지요?

뭐니 뭐니 해도 주연은 박근혜 대통령 본인입니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고 난 뒤 세 차례나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10월 25일 1차 담화에서는 최순실로부터 일부 연설문의 도움을 받았다고 실토했습니다. 11월 4일 2차 담화에서는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되었나”라는 말을 남기며 눈물까지 비쳤습니다. 검찰수사에 협조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11월 29일 3차 담화에서는 태도를 바꿔 자신은 잘못한 게 없고 사람을 잘못 썼기 때문이라고 변명했습니다. 책임이라는 단어는 실종되고 자신의 퇴진 여부를 정치권에 넘기겠다고 했습니다. 누구나 눈치 챌 수 있는 꼼수였지요. 본질은 매번 말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2차 담화에서 약속했던 검찰 수사 같은 건 아예 거부했습니다. 보통 두께의 얼굴로는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태도 변화의 하이라이트는 새해 첫 날 벌어졌습니다. 박 대통령이 느닷없이 기자간담회를 자청해서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들을 전면 부정했습니다. 단 한 가지도 잘못한 게 없다는 것이지요. 심지어 세월호 침몰 당일에도 할 일을 다 했다고 강변했습니다. 엮였다는 말까지 썼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는 사람의 태도는 아닙니다. 그럼 그동안 사과는 왜 했을까요? 사과는 잘못한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을까요? 누가 봐도 새해 첫날부터 국민을 향해 거짓말의 향연을 펼친 것입니다. 온갖 곳이 썩어 냄새가 풀풀 나는데도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후안무치가 아니라 적반하장에 가깝지요.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수식어로 불리던 사람은 어디 갔을까요?

막무가내 식 강변은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어제(5일)는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이 탄핵심판 2차 변론에서 "지금까지 이어온 박 대통령 탄핵 요구 촛불집회의 민심이 국민의 민심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집회 주최 측이 종북(從北)성향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수백 만 명의 외침에 민심 대신 종북을 덧씌우는 망발까지 보인 것입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개 이야기 하나 더 할까요? 이번엔 제 형님이 단독주택에 살 때 키우던 진돗개가 주인공인데요. 무척 영리하고 충성스런 개였습니다. 한번은 길고양이가 집안에 들어와서 새끼를 낳아놓고 갔습니다. 제 어머니는 어린것들이 불쌍하다고 우유를 먹이며 정성껏 돌봤지요. 고양이들이 제법 자라서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무렵이었습니다. 하루는 온 가족이 외출했다가 돌아와 보니 개가 단단한 목줄을 끊고 새끼 고양이들을 모두 물어죽였더랍니다.

형님이 수의사를 찾아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물었답니다. 수의사의 대답은 명료했습니다. “충성스런 개는 가족 외에 집안에서 움직이는 것들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주인을 해칠 것이라고 믿는 것이지요. 그러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없애는 것입니다.”

개도 자신의 주인에 대해서는 충성을 합니다. 책임진 대상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합니다. 비싼 밥 먹는 사람은 최소한 이보다는 나아야겠지요. 지도자는 말할 것도 없고요.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헌법 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돼 있습니다. 그리고 제 7조 1항에는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돼 있습니다. 대통령은 공무원입니다.

거짓말이나 들으려고 대통령으로 뽑아준 게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일해 달라고 뽑아준 것입니다. 국민을 언제까지 속이는 대상으로 삼을 건지요? 나라는 무너지든 말든 국민이야 불행해지든 말든 자신만 지키겠다는 생각, 끝까지 버리지 않을 건가요?

이호준  sagang@mediaso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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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박사모#탄기국#대국민 담화#종북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칼럼리스트 sagang@mediasoom.co.kr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지중해를 걷다><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안부><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나를 치유하는 여행> 등의 여행서, 산문집과 캘리그래피 시집 <사랑은 저 홀로 아름답고>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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