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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다이어리14] 마차가 달리는 고속도로
텅 빈 고속도로를 마차가 달리고 있다.

초록의 계곡 비냘레스(VINALES)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베다도 지역을 거쳐서 아바나 시내를 빠져나가는 중에도, 이것저것 볼 게 많아서 차창에서 눈을 떼기 어려웠다. 스페인어 베다도는 ‘보호’ ‘보존’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옛날에는 이곳이 밀림지역이었는데 나무를 베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보호지역으로 지정한데서 붙은 이름이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고 한다. 물론 호텔 나시오날, 아바나대학교, 미국대사관 등이 포진하고 있는 지금의 베다도에서 밀림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플라야는 부유층이 모여 사는 곳이다. 아바나의 비벌리힐스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이곳을 지나다보면 각국 국기들이 펄럭거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대사관과 국영기업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쿠바 수준으로는 놀랄 만큼 세련된 집들도 많다. 유럽 어디쯤을 지나는 듯, 조깅하는 사람들도 자주 볼 수 있다. 이 지역에는 웃지 못 할 사연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살고 있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주도한 혁명이 성공하면서, 이 지역의 저택에서 살던 미국인들이 강제 귀국한 뒤에도 그들이 고용했던 정원사·가정부 등은 언젠가 주인이 돌아올 것으로 믿고 집을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50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자기들끼리 한 집을 5~6등분해서 살고 있다고 한다.

차들이 거의 없는 고속도로

교외로 계속 달리면 고속도로가 나온다. 말이 고속도로지 우리의 국도 수준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것도 제 때 제 때 수리하지 못하고 있는…. 고속도로 옆으로는 평원지대가 펼쳐지면서 키 작은 관목 숲이 끝없이 이어진다. 하늘을 맴도는 독수리 몇 마리밖에 보이지 않는 구간을 계속 달리다 보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득하다. 그런 풍경을 지날 때마다 자주 드는 생각은, “저렇게 넓은 평지를 왜 그냥 묵히지? 우리 같으면 벌써 개간해서 논과 밭을 만들었을 텐데….” 개발에 물든 내 욕심이 과한 탓이다. 가끔 소들이 게으르게 누워있는 목장도 나타나지만 평원에 얼룩 하나 찍은 것처럼 왜소해 보인다. 사람 사는 집들을 발견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다. 숨바꼭질을 하듯 숲속에 숨어있거나 아주 띄엄띄엄 나타날 뿐이다.

쿠바의 고속도로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 고속도로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자동차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한참 달려야 마주 오는 차를 하나씩 구경할 수 있다. 쿠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태어난 영역에서 평생을 살기 때문에 타 도시를 오갈 일이 많지 않다고 한다. 더구나 산업이 발달하지 않아서 물류의 이동도 거의 없다. 어찌 보면 자급자족을 기반으로 하는 농경사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셈이다.

두 번째 특징은 차를 얻어 타려는 히치하이커가 무척 많다는 것. 고속도로에서 히치하이킹이라고? 쿠바에서는 가능하다. 한 둘씩, 혹은 일가족이 길가의 뙤약볕 아래 서서 하염없이 태워줄 차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짠하다. 성장(盛裝)한 아가씨들도 길가에 서서 차를 잡는다. 쿠바는 주도(州都) 간을 이동하는 비아술 버스 같은 대중교통이 있지만, 아무 곳에서나 아무 때나 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정규 교통편이 없는 마을도 많다. 비아술의 경우 예약을 해야 탈 수 있는데, 그마저도 당일이나 하루 전 예약하는 것은 어렵다고 보면 된다. 트럭을 개조한 버스가 있지만 마을버스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세 번째는 시대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다양한 교통수단이 고속도로를 달린다는 것. 오토바이 정도는 최첨단이라고 보면 된다. 자전거에 아이를 태운 아빠가 고속도로를 씽씽 달리고 마차가 덜컹거리며 뒤를 따른다. 차가 지나건 말건 자신들의 길을 묵묵히 갈 뿐이다. 신기한 건, 로드킬을 거의 볼 수 없다는 것. 물론 이동하는 동물이 없어서라기보다는 통행하는 차량이 적어서 그럴 것이다.

띠집으로 된 고속도로 휴게소

고속도로 휴게소도 그냥 지나치기 아까울 만큼 특별한 풍경을 자랑한다. 내가 들렀던 곳은 휴게소라기보다는 전형적인 전원주택에 가까웠다. 건물은 띠집(야자수 잎이 원료)이었고 고속도로 안과 밖은 아무런 경계도 없었다. 도랑 건너 밭에는 겨리질(소 두 마리가 끄는 쟁기질)을 하는 농부가 구름 따라 천천히 오가고 있었다. 겨릿소도 농부도 누가 오든 가든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설정해놓은 배경화면을 보는 것 같았다. 휴게소에는 말과 소에 타려는 손님을 기다리는 청년들이 서 있었지만, 관광객은 그들에게 별 관심이 없어보였다.

휴게소 근처 풍경

갈 길이 급하지 않으면 고속도로를 벗어나 산책을 해보는 것도 좋다. 자연 속으로 걸어 들어가 천천히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구름이 흐르는 언덕 위에는 소들이 풀을 뜯고 농부는 숲속에 일궈놓은 밭에서 괭이질을 한다. 우리가 1970년대쯤에 잃어버렸던 고향의 풍경이 거기 있다. 길가에 서서 오가는 마차를 찍는 것도 재미있다. 마차의 주인은 카메라 앞에서 속도를 늦추고 손을 흔든다. 고속도로에서의 산책이라니. 내가 사는 나라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쿠바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쿠바사람처럼 느긋한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이호준  sagang@mediaso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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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고속도로#마차#히치하이커#휴게소#겨리질#아바나의 비버리힐스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칼럼리스트 sagang@mediasoom.co.kr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지중해를 걷다><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안부><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나를 치유하는 여행> 등의 여행서, 산문집과 캘리그래피 시집 <사랑은 저 홀로 아름답고>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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