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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술로 그린 스케치 4] 술맛을 측정할 수 있을까?

<신의 물방울>(神の雫 かみのしずく)은, 아기 타다시가 스토리를 쓰고 오키모토 슈가 그린 일본의 만화 작품이다. 2004년에 시작해서 44권을 마지막 작품으로 완성하기까지 10여년이 걸린 작품이다. (44권 완결이지만 이후 스토리가 나오는 중 관련링크http://blog.naver.com/no_comm/220525365829)

맥주 회사 영업 사원 칸자키 시즈쿠는 아버지의 부고를 받는다. 시즈쿠의 아버지는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인 칸지키 유타카. 변호사에게 받은 유언장에는 유타카가 고른 〈12사도〉라 불리는 12병의 와인과 〈신의 물방울〉이라 불리는 한 병의 와인을 찾는 사람에게 유산과 와인 컬렉션을 상속하겠다고 적혀 있었다. 시즈쿠는 유타카가 죽기 1주일 전에 양자로 입적한 와인 평론가 토미네 잇세와 경쟁하면서 아버지가 고른 와인을 하나씩 찾아간다.

칸지키 유타카가 남긴 와인에 대한 특성은 뜬금없는 수수께끼 같다. 12사도 중 첫 번째 사도인 와인 샤또 몽페라(Ch. Mont-Perat)에 대한 메모는 이렇다.

"나는 원생림으로 뒤덮인 깊은 숲속을 떠돌고 있다. 이끼 낀 나무들에서 습기를 머금은 생명의 향기가 감도는 가운데 마음의 안식을 찾아 숲속으로 걸어간다. 자연의 혜택이 가져다준 이 풍요로움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이 처녀지이기에 어울린다. 오호, 보라. 저기 어울려 노는 짙은 보랏빛을 띤 두 마리 나비를! 이 옹달샘은 너희의 성지일지 모르겠구나.”

이 황당한 메모로 찾아낸 와인이 샤또 몽페라(Ch. Mont-Perat)다. 샤또 몽페라는 프랑스의 와인명산지 보르도의 와인이다. 포도나무 한 그루에 열리는 포도를 여섯 송이로 제한하는 등 와인 맛과 향의 농도를 높이고 건강한 포도나무를 재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연구한 결과 오늘날의 명성과 인기를 만들어냈다. 또한 프랑스 와인으로는 처음으로 품질관리인증 ISO 9002와 환경친화인증 ISO 14001을 획득한 와인이기도 하다.

<신의 물방울> 1권에서는 샤또 몽페라를 마시는 순간 전설적인 록 그룹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들린다고 표현하여, 샤또 몽페라 와인의 진하고 파워풀한 개성을 대중음악과 견주어 표현했다.

메모에 근거해 신의 물방울을 찾아가는 과정은 칸자키 시즈쿠나 토미네 잇세나 모두 자신의 관능적 맛 감별에 의존한다. 과학적 분석은 작품 내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술의 경우에도 해마다 지역별로 또는 술 관련 기관마다 품평회를 연다. 술을 품평하는 기준은 역시 관능평가이다. 그렇다면 관능적인 시음평가로 술을 평가할 수 있을까?

술을 선택하는 근거중 하나는 술맛이다. 그렇다면 술맛이 좋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은 전 세계 어느 누구도 명쾌하게 답한 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은 그 맛에 따라 등급이 결정되기도 하고, 가격이 결정되기도 한다. 명확하지는 않더라도 술맛이 좋다는 근거가 있을 것이다.

와인과 맥주는 제법 술맛을 변별하는 기준을 공유하고 있다. 시음 테스트지가 와인 또는 맥주 맛을 구분하는 기준을 정해준다. 막걸리 붐이 일면서 막걸리 품평회가 활성화되고 이에 따라 품평 기준이 필요하게 되었다. 몇몇 기관에서 사용하고 있는 막걸리 시음 테스트지는 와인과 맥주, 사케 시음 테스트지를 변용한 것이다.

막걸리 시음 테스트지가 공유하고 있는 막걸리 맛은 단맛, 신맛, 쓴맛(매운맛), 짠맛, 감칠맛의 다섯 가지 맛을 변별하는 정도이다. 이에 탁도, 색, 향 등이 첨가된다. 시음 잔은 국세청 주류연구소의 경우 유리 와인잔을 시음잔으로 사용한다.

기준이 어떻든, 시음 막걸리의 환경이 어떻든, 달라지지 않는 것은 그 평가가 관능적이라는 것이다. 시음자의 맛 감별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일본 주조 기술자의 6.9%가 맛을 모르는 미맹(味盲)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술의 관능평가는 세계적이다.

1955년 도쿄의 애주가 십 수 명이 모여 관능검사 연구회를 시작한 것이 일본 최초의 관능적 술맛 측정을 시도한 시작이다. 이 연구회의 시작에는 1935년 화학 성분으로 술맛을 측정한 선험 연구 사례의 배경이 있었다.

1935년 양조시험소의 구로노 박사는 일본술에 영향을 미치는 70여 가지의 성분 외에 당시의 화학 성분 분석 기술 수준으로는 검출할 수 없는 미지의 성분이 있다는 것을 고려해 정량의 화학성분으로 일본술의 맛을 판정한다는 것의 무모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당시의 기술만으로 측정 가능한 성분 중에 술맛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성분으로 추정하는 화학적 정량치로 술맛을 판정할 수는 없을까? 라는 화두로 연구가 진행되었다.

전국 700여종 일본술을 100여명의 연구자들이 술맛과 향에 미치는 화학적 성분을 분석해서 100여 페이지의 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후 술 맛에 대한 연구는 전쟁으로 중단되었다. 1951년 MIT에 유학 중이던 일본인을 통해 미국과 서양이 식품의 맛을 측정하는 법을 접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자 구로노 박사의 연구로 시작된 연구의 성과가 관능 검사법(맛, 색, 향)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1955년 관능검사 연구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연구회는 해외, 특히 미국 문헌을 중심으로 문헌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그들만의 독자적인 술 분석 방법을 찾아내어, 술 생산에 적용하는 과정을 거쳐 오늘날 술맛을 측정하는 기술 즉 관능검사 기술은 세계 최고의 수준이 되었다.

만화 <신의 물방울> 10년이 만화가만의 독자적인 노력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술에 대한 연구와 실제 세계 최고의 성취가 있었기에 당혹스러운 메모와 와인 찾기가 당당히 가능할 수 있었다. 이런 배경을 모르는 혹자가 <신의 물방울>에서 언급하는 김치에 어울리는 와인 찾기를 폄하하는 것은 술도 김치도 모르는 무지를 드러내는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일본의 술맛 감별은 기기사케라는 사케 감별 과정을 통해 우리도 익힐 수 있다. 일본이 미국의 맛 측정법에 자극을 받아 사케 측정법을 최고 수준으로 성장시켰듯이, 우리술도 양조 과정이 비슷한 일본술의 측정법을 뛰어넘는 표준 측정법이 연구되기를 바래본다.

이정희  editor@mediaso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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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하얀술 대표이사 editor@mediasoom.co.kr
<전 (사)한국공연문화협회이사. 전 녹색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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