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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까망이’의 겨울나기

찬바람이 어깨를 짓누르는 늦은 귀갓길. 길모퉁이에서 어둠을 검게 가르며 걸어가는 까망이를 만났습니다. 까망이는 제가 사는 동네의 길고양이입니다. 꽤 오래전부터 붙박이처럼 살고 있지요. 이름은 제가 지어줬습니다. 주요 서식지는 쓰레기 집하장 근처입니다. 어젯밤은 아파트 화단에서 걸어 나와 주차장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녀석이 발자국 소리를 듣더니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습니다. 여전히 서두르는 법이 없습니다. 제가 가까이 가자 차 밑으로 들어가 저를 빤히 쳐다봅니다. 두 눈만 반짝거립니다. 호주머니를 뒤져봤지만 나눠먹을만한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술안주라도 집어올 걸 그랬다고 괜히 자책합니다.

그런데 까망이의 걸음이 유난히 무거워보였습니다. 어디 아픈 게 아닌가 싶어 살펴봤더니, 별 이상은 없는 것 같고 배가 유난히 불러 있습니다.
“쯧쯧! 이 겨울을 어찌 나려고 애까지 가졌니? 엄동설한에 대체 어디서 애를 낳고 어떻게 기를 건데?”

저도 모르게 힐난 섞인 한탄이 나왔습니다. 도시라는 곳이 얼마나 비정한지 집 없는 동물들이 출산을 하고 기를 곳이 없습니다. 특히 한 겨울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시골 같으면 빈 창고나 나뭇간(역시 옛날이야기긴 하지만)이라도 있지만, 도시는 모든 문이 닫히거나 잠기기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어디 한 곳 빈틈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어디선가 새끼를 낳고 기릅니다. 마치 천형이라도 받은 것처럼, 악조건 속에서도 끊임없이 대를 이어갑니다.

제 한탄의 시선은 길고양이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겨울의 삭풍이 두려운 게 어찌 길고양이뿐일까요? 정작 더 큰 걱정은 사람 사는 일이지요. 날은 자꾸 추워지는데 불기 없는 방에서 지내는 노인들은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밥을 굶는 아이들이 있고, 노숙자들의 겨울도 작년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작년만 못합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단군 이래 최대의 ‘정난(政亂)’을 겪으면서 사회 소외계층은 존재감마저 희미해지고 말았습니다. 존재감이 지워지니 뉴스에서도 안 보이고 대중의 기억에서도 흐릿해집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열매는 지난달 21일 연말연시 이웃돕기 모금 캠페인을 시작한 뒤 일주일간 132억 원을 모금했다고 합니다. 이 같은 숫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422억원)과 비교해 68%나 줄어든 것입니다. 밥상공동체 연탄은행도 지난해에는 연탄 150만장의 후원을 받았지만 올해는 96만장으로 36% 감소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불황에 김영란법,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까지 겹치면서 소외계층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뉴스를 접하면 세상이 금방이라도 끝날 것 같아 온 몸이 저립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지금까지 세상이 무너진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관만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국민은 여전히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려워져도 착한 사람들은 쉬지 않고 착한 일을 합니다. 아니, 진심으로 이웃을 챙기는 사람은 생색 따위에 마음을 기대지 않습니다. 매스컴 같은 건 신경도 안 씁니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이슬비 내리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듯이,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 이 시간에도 이웃을 위해 땀 흘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누구는 홀로 사는 노인들의 김장을 해주고 누구는 연탄을 지고 끌고 언덕길을 오릅니다. 아침마다 길고양이에게 물을 떠주고 떠돌이 개에게 밥을 챙겨주는 사람들도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그들 역시 생명이라는 이름으로 사람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지요.

다시 나라를 생각합니다. 지금의 난국도 언젠가는 정리되고 상처도 조금씩 아물겠지요. 더 이상 국민을 우습게 아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재벌이나 고위 관료에게 이 나라의 주인노릇을 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묵묵하게 자신이 할 일을 하고 어딘가 숨어서 이웃을 돕는 평범한 사람들이 진정한 이 나라의 주인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바뀌는 세상에서는 더욱 더 그래야 합니다.

후손들에게 가진 자들이 더 가지려 하고 윗물이 아랫물을 더럽히는 나라를 물려줄 수는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굶고 얼어 죽는 나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해도 조금씩 나누고 서로 어깨를 겯고 가는 나라, 서로 마주 보며 웃을 수 있는 나라, 어디에 가든 정의의 깃발이 펄럭이는 나라, 그게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나라입니다.

탄핵안 표결의 아침, 새벽에 일어나 '사람이 이기기'를 기도하면서 소망 한 줄 얹습니다. 한 겨울을 잘 견뎌서, 내년 봄에는 까망이가 예쁜 새끼들과 함께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사람의 일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호준  sagang@mediaso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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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시인.여행작가.칼럼리스트 sagang@mediasoom.co.kr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클레오파트라가 사랑한 지중해를 걷다><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안부><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나를 치유하는 여행> 등의 여행서, 산문집과 캘리그래피 시집 <사랑은 저 홀로 아름답고>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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