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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것들 24] 굿

그 무렵이라는 건 어렴풋이 짐작이 가는데, 국민학교 4학년이었는지 5학년이었는지는 간유리를 통해 보는 풍경마냥 분명치 않다. 짝을 잃어 못쓰게 된 장난감 퍼즐처럼, 순서를 짜 맞추기도 힘들어졌다. 아주 드물게, 기억을 살려 완성된 그림을 그려보려 하지만 터무니없이 왜곡된 조합만이 나타나고는 한다. 그러나 망각이 위대하다면 기억도 가끔 놀라운 힘을 발휘 할 때가 있다. 예고되지 않은 시간과 장소에서 불쑥 내밀어지는 잔흔은 여전히 잘 갈린 작둣날처럼 시퍼렇다.

남포등을 여러 개 매단 마당은 제법 밝았다. 어둑신해질 무렵부터 모여든 동네사람들로 마당은 빈틈이 없었다. 초가을이었지만, 마루에 뉘어진 나는 두꺼운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겨 덮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 모른다. 나는 그 곳에서 도망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자꾸 몸을 뒤챘다. 타는 듯한 갈증에 시달리면서 고개를 빼어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가 태어난 기념으로,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심었다는 오동나무의 커다란 잎새 사이에 몸을 숨긴 달을 발견했을 땐 목을 비집고 나오는 탄성을 이 사이에 물고 아꼈다. 유일하게 익숙한 존재였다. 그 자리의 주인공으로 놓여진 나는 그 자리의 유일한 이방인이었다.

남색 치마저고리 위에 타오를 듯 붉은 쾌자(快子)를 걸친 무당의 머리 위에는 꽃 갓이 조금 위태롭게 얹혀 있었다. 나는 갓이 언제쯤 떨어질까 하는 아이다운 궁금증으로 침을 꼴깍 삼켰다. 신이 오른 무당이 달이라도 따 내릴 듯 겅중겅중 뛰었다. 무당의 양손에 들린 칼이 달빛을 머금었다 토하면서 몸을 뒤챘다. 칼끝의 쇠고리에서 나는 쩔렁 쩔렁 소리가 계속 신경줄을 비틀었다. 쇳소리 사이사이로 무당은 끊임없이 사설을 뱉어내었다. 불쌍허신 조씨 망자…… 편안허게 가옵시고……. 나는 꽁꽁 언 겨울날, 오줌이라도 지린 것처럼 진저리를 쳤다. 며칠 전 할머니와 어머니가 나누던 대화가 귓속에서 꿈틀거리며 자꾸 키를 키웠다.

“늬 시아버지가 갈 델 뭇 가고 구천을 떠도니께 쟤가 저렇게 자꾸 아프다는 겨. 이승에 뭐 존 걸 두고 갔다구 그러는지 원”
할머니는 치마말기를 올려 코를 팽하고 풀었다. 개진개진 젖은 눈가가 금방 허물어질 듯 했다.
“쟤가 워떤 애냐? 5대 독자여, 5대 독자. 굿 헐 돈 애껴서 앞길에 지 하래비 원혼을 달구 다니게 헤서야 쓰겄냐? 그러니께 너는 아무소리 허지 말고 보구만 있어”
“그리두 요즘 시상에 굿 허는 사람이 워딨다고……. 그러너니 읍내 병원이라도 한번 더 가는 게 날텐디. 굿헐 만한 돈두 웂구…….”
“애가 왜 자꾸 말이 많다냐? 그러다가 동티나먼 워쩔라구. 병원 가서 고칠 병 같으먼 벌써 나섰어야. 잘못되는 꼴 봐야 정신 차리 것냐? 그러구 돈 걱정은 말어. 내 몸을 팔어서라두…….”

마당에는 열기 같은 것이 펄펄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리저리 뜸을 들이던 무당이 작두 위로 올라서자 둘러선 사람들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렀다. 나는 이불을 제치고 조금 몸을 일으켰다. 무당은 시퍼런 작둣날에 발을 비벼댔다. 소름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작두에서 내린 무당이 훠이- 훠이- 소리내며 다가올 때쯤엔 온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벌레처럼 옹송그려 몸을 조그맣게 만드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의 전부였다. 자갈밭을 달리는 듯 제법 낮아졌던 징과 장구소리가 숨이라도 넘어갈 듯 긴박해졌다. 무당이 가까이 오면 올수록 떨림은 걷잡을 수 없이 심해졌다. 내 눈에 보이는 무당의 얼굴은, 악귀의 모습 그대로였다. 악귀는 순간순간 할아버지로 바뀌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생전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이 놈,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 이놈아. 억울해서 못 죽어. 눈을 감기 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눈을 감기 전…….

“글쎄 늬 시아버지가 워디서 점을 봤다는디, 쟤가 전생에 자기 웬수였다는구나. 참말로 기가 맥혀서. 그 점쟁이가 당신이 살라면 당신 손자가 죽어야헌다구 그렜다먼서, 애를 저렇게 미워하는구나. 살만치 산 당신이 가야지 웬말이냐고 퉁을 줘도 씨도 안 멕히니. 당신 목심만 중헌 줄 아는 양반이니…… 얼마나 더 살 것다고 하나밖에 웂는 손자를. 아들, 메느리 젊으니 애는 또 낳으면 된다나 워쩐다나. 젊어서나 늙어서나 웬수같은 짓만 허고 댕기니께”

징소리는 갈수록 커졌다. 한을 풀지 못한 할아버지가 날 데리러 온 것이 틀림없다는 공포에 심장이 터질 듯 부풀어올랐다. 손을 연신 내저었지만 내 미약한 저항은 누구의 눈길도 끌지 못했다. 마당가에 서 있던 오동나무도 넓은 잎새를 흔들면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쿵- 쿵- 오동나무가 다가오는 소리…… 징소리…… 달 없는 밤길에 나선 듯 눈앞이 캄캄해졌다. 비명은 잘못 삼킨 갈치가시처럼 목에 걸려 넘어오지 않았다. 순간 의식을 잡고 있던 끈이 툭, 하고 끊어졌다.

(이호준 단편 '올가미 벗어나기' 중에서)

사강  sagang@mediaso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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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강 / 여행작가 sagang@mediaso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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