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7.3.1 수 18:49 ㆍ 구독 Subscribe Now
상단여백
HOME
[고백록]나도 알고 싶어요

꽃이름을 많이 알고 싶어요. 나무 이름과 새 이름도 많이 알고 싶어요.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은 모두가 다 아는 일반적인 것들만 있어요. 개나리, 진달래, 꽃, 목련, 참새, 까치, 제비 그런 이름만 알아요. 그런 이름 말고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지만 앉은 자리에서 환하게 피는 꽃과 사람에게 산소를 만들어 주는 것 외엔 할일이 없는 한량같은, 나무와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해서 자유로운 새들의 이름을 많이 알고 싶어요.

그동안 난 내 마음에만 집중하느라 내 마음과 비슷한 책들만 읽었잖아요.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책들은 결론적으로 너무 캄캄해요. 사람의 마음 자체가 원래 캄캄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짧은 생을 환하게 살고 싶어졌어요. 환하게 살려면 우선 자기 연민부터 버려야 하구요. 순하게 세상속에 살면서 아름다운 것의 한 부분이 되어 있는 것들을 알아가야 하지요.

단어들도 눈을 돌려보니 소리만으로도 몽글몽글한 사랑이 움트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더군요. 그 중에 [처마홈통]이란 말이 요즘 계속 떠올라요. [덜꿩나무]란 꽃도 웃음짓게 하구요. [처마홈통]은 지붕에 내리는 빗물이 모여 흐르게 하는 거잖아요.빗물 흐르는 소리가 작은 북 두드리는 소리 같아요.

우리 큰애가 겨우 앉아 있을 때 분유통을 젓가락으로 두드리고 놀았는데 입에는 뭔가를 물고 우물거리면서 두르렸지요. 그 모습이 생각나요. 어느 한 시절도 넉넉했던 때가 없었지만 큰 아이 태어난 후 돌이 되기 전의 일년 정도의 시간은 제일 어려웠던 때였어요.

그럼에도 세월이 지나면 이렇게 예쁜 추억이 되어있어요. 청년인 아들이 아기로 남아 있는 그 시절의 기억이 모여 흐르는 [처마홈통] 빗소리를 들어요.

[덜꿩나무]는 [조팝나무]의 꽃보다 더 잔잔하게 피는 꽃인데요. 좀 모자란 느낌을 주는군요. 모자라는 느낌을 주어도 얼마나 이쁜지 몰라요. 쉰 살이 되니 뜨거운 물도 차가운 물도 싫고 미지근한 물이 좋아졌어요. 내 혀도 그러한데 그 혀가 만들어 내는 말도 뜨겁게도 어내지 말고 차갑게도 어내지 말고 말이 힘을 발휘하지 않고 느긋하게 나를 기다려주고 상대를 기다려 주는 말만 했으면 좋겠어요. 모든 게 훈련이 필요하잖아요.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게 된 데에는 지난 몇 년 간 어떻게 살 것이냐를 두고 나를 징그럽게 괴롭혔던 기억이 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예요. 내 생은 이대로 묻히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살아온 날들에 대한 분노와 회한이 나를 괴롭혔어요. 그 고통 때문에 내가 죄도 없는 계란을 막 깨고, 감자도 막 집어던져서 깨뜨리고 그랬잖아요. 분노가 그 정도로 표현 된 것, 그것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보면 다소 귀염성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러한 내 행동을 보면서 얼마나 스스로에게 충격을 받았었는지요.

그 때 묵묵하게 지켜봐 주어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 때 당신도 놀라셨지요? 당신이 말없이 지켜보고만 있어서 나는 스스로 그 캄캄한 우물에서 손톱이 빠지게 벽을 긁어대며 올라 올 수 있었어요. 이제 내가 어떤 말을 할지 어떤 글을 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주 조금 보여요.

지금처럼 나를 지켜봐 주세요. 나는 명랑한 아줌마의 시절을 지나 씩씩한 할머니로 살께요. 고맙고 감사해요. 늘 내가 마시는 산소와, 내가 쬐는 빛과, 내게 전달되는 모든 울림 속에서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 나는 순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글쓴이 : 유희주 시인
<매사추세츠 한인도서관 관장. 2000년 『시인정신』으로 시 작품 활동을, 2007년 미주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2015년 『인간과 문학』에 소설「 박하사탕」을 발표하며 소설 작품 활동도 시작했다. 시집 『떨어져나간 것들이 나를 살핀다』 『엄마의 연애』와 산문집 『기억이 풍기는 봄밤』을 펴냈다>

유희주  qhtmxhs05@naver.com

<저작권자 © 미디어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희주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