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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것들 16] 책보

그 사진과 만나게 된 건 아주 우연한 기회였습니다. 다른 자료사진을 찾던 중, 바늘로 찌르듯 강렬하게 눈을 끌어당기는 흑백사진 세 장. 그 속엔 아주 오래 전의 제가 들어 있었습니다.

아마 초겨울쯤이었던 모양입니다. 잔뜩 야윈 나무들이, 바람을 피하느라고 약간 구부정한 자세로 서 있고, 그 길을 나무처럼 생긴 아이들이 걸어갑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교복 ‘비슷한 걸’ 입고 짧은 머리엔 교모로 보이는 모자도 썼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들여다봐도 중학생만큼 나이가 들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옛날엔 국민학생(초등학생)도 교복처럼 생긴 걸 입기도 했지요. 아, 물론 중학생이어도 별 문제는 없습니다. 발에는 고무신을 신은 것 같습니다. 검정 고무신이겠지요.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책보입니다. 어느 아이는 끈을 길게 늘여 핸드백처럼 메었고, 어느 아이는 어깨에 꽁꽁 묶었고, 또 어느 아이는 손에 들거나 옆구리에 끼었습니다. 공통점이라고는 책을 담은 게 가방이 아니라 보자기라는 사실 하나뿐입니다.

책보자기 혹은 책보따리라고도 부르던 책보. 낡은 흑백 사진에 담겨 제 눈을 찌르고 들어온 게 바로 그것이었지요. 지금 눈으로 보면 가난에 찌든 듯, 어찌 보면 불쌍해 보이기까지 하는 아이들 모습이지만, 제 눈엔 얼마나 정답고 아름다운지요. 사진 속으로 풍덩 빠지기라도 할 듯, 코를 박고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70년대 이전에 농어촌, 혹은 산골에서 자란 이라면 누구나 책보를 기억할 것입니다. 학교가 드물던 시절이라 최소한 몇 리, 심하면 몇 십 리를 걸어서 등교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시절 등굣길의 풍경은 비슷비슷했습니다.

사내아이들은 책보를 어깨에 대각선 방향으로 매고 학교에 갑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멋을 낸다고 끈을 늘여 가방처럼 메거나 들고 다니기도 했지만 대세는 어깨에 비껴 매는 것이었습니다. 여자아이들은 보통 허리에 둘러서 매지요. 누가 따로 가르치는 것도 아닌데 그게 원칙이었습니다.

책을 싸는 보자기도 가지각색이었습니다. 광목이 주 재료였지만 삼베 같은 천도 썼습니다. 때가 탈 것에 대비해서 보통은 짙게 물들인 천이 많았지만, 울긋불긋 한 것도 있었고 구멍이 나서 군데군데 꿰맨 것도 흔히 볼 수 있었지요.

아침이면 학교 가기 전에 보자기를 펼친 뒤 그날 필요한 책을 올려놓고 김밥 말듯 둘둘 말아서 어깨나 허리에 매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책만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필통이나 주판, 삼각자 같은 것들도 따라 들어가지요. 그런데 이 필통이 문제였습니다. 지금처럼 고급스러운 게 아니라, 대부분은 깡통 출신의 양철로 만든 것이었지요. 그 양철 필통에 든 몽당연필 두어 자루, 칼, 지우개, 컴퍼스 같은 것들이 학교에 가는 내내 달그락거리며 잔소리를 해댑니다. 천천히 걸을 땐 그나마 조용하지만, 뛰어갈 땐 달그락 딸그락 소리도 덩달아 빨라지지요.


책보 속에 들어가는 또 하나의 귀한 손님은 도시락입니다. 벤또, 혹은 변또라고 부르던 시절이지요. 도시락은 별도의 보자기에 싸서 들고 다니는 게 보통이었지만, 두 손이 자유롭고 싶은 아이들은 그걸 책보 안에 같이 쌌습니다. 문제는 손은 편해서 좋은데 가끔 속 뒤집어지는 일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그땐 도시락도 양철이나, 양은으로 만든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지금처럼 곰국을 담아도 새지 않는 도시락이야 상상도 못할 때지요. 밥을 풀 때, 도시락 한쪽을 조금 비우고 그곳에 작은 반찬통을 함께 넣는 그런 구조였습니다.

그렇게 싼 도시락을 책과 함께 싸서 어깨에 매고 학교에 가다보면 뭔가 찝찝한 게 흐르는 느낌이 듭니다. 벌써 그 ‘뭔가’는 코를 자극하기 시작하지요. 책보를 풀어보기도 전에 김칫국물이란 걸 압니다. 아우!! 그 쉰 냄새. 꽁보리밥에, 반찬이라고는 김치나 장아찌가 전부인 도시락이 줄줄 샜으니, 냄새가 요란한 건 당연하지요. 김칫국물을 실컷 마신 책은 벌겋게 취해있고, 밥과 김치는 제멋대로 붙잡고 도는 바람에 비빔밥이 된지 오랩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도시락의 추억은 쌓이기 마련이지요. 도시락 속의 젓가락들이 얼마나 떠들어 대는지, 필통 정도는 기가 죽어 입도 벌리지 못할 정도입니다. 소풍 갈 때도 책보는 긴요하게 쓰입니다. 보리밥이 담긴 도시락과 삶은 달걀 두어 개가 싸입니다. 사정이 좀 나은 집 아이들의 책보에는 막사이다라고 부르던, 상표도 없는 사이다가 한 병 추가되기도 하지요.

그래도 책보를 들고 떠나는 소풍 길은, 어찌 그리 재미 있던지요. 엄마를 졸라 받은 동전 두 개는 망설이고 망설이다 결국 못 쓰고 그냥 돌아오는 때도 있었습니다.

옛날 시골아이들은 일꾼 하나 몫의 일을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지금 도시아이들보다는 훨씬 여유로웠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손짓하는 것도 많았지요. 빨리 가서 일손도 돕고 동생도 봐야 한다는 생각이 꼬리처럼 따라다니지만, 대개는 자연의 유혹에 넘어가고 맙니다. 각종 열매의 달콤함에 주저앉기도 하고, 꽃마다 몰려든 꿀벌을 잡는다고 고무신을 돌리다 몇 시간씩 보내기도 했습니다.

책보에서 책을 분리해놓은 뒤 망또라도 되는 양 어깨에 매고 칼 싸움에 해지는 줄 모르는 것도 예사였습니다. 냇가의 물고기는 또 얼마나 매력적이었는데요. 책가방 집어던지고 물고기를 따라다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어? 책보를 어디에 뒀더라? 당황하는 적도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물론 대부분은 금방 찾지만, 영영 잃어버리는 경우도 없지 않아서 학기 내내 옆에 남의 책으로 동냥 공부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런 날엔 부지깽이가 엉덩이에서 춤추는 건 안 봐도 뻔하지요. 책보에 얽힌 사연은 그 정도에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옆집 필순이는 학교에 갈 때마다 눈물바다였습니다. 필순이 아버지가 “지지배가 집에서 애나 볼 것이지 공부는 무슨 공부냐”고 책보를 감추는 바람에 아침마다 책보를 찾으러 다녔습니다.

어느 땐, 굴뚝 사이에서 어느 땐 장독대에서 책보를 찾아들고 엉엉 울며 학교에 갔지요. 그래도 책 보따리를 아궁이에 던져버렸다는, 삼숙이 아버지보다는 훨씬 나은 경우였지요. 책보를 목숨처럼 알고 지킨 덕분에 필순이는 훗날 대처에 나가 공부를 하고, 큰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책보에 얽힌 잊지못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운동회 연습을 할 때니 아마 초가을쯤 되었을 겁니다. 우리 반은 그날따라 교실이 아닌 운동장 가에 책보를 놓고 연습을 했습니다. 운동회야말로 그 일대 모든 동네에 가장 큰 잔치였으니 연습은 전쟁이라도 치루 듯 치열했습니다.

오전 연습을 마친 뒤, 허기진 배를 안고 모두 허겁지겁 달려간 목적지는 책보를 둔 곳이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도시락이 있는 곳이지요. 모두 3년 가뭄에 단비 만난 듯, 감격적인 표정으로 도시락과 조우하는 순간, 저는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도시락이, 아니 책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책보가 제 발로 걸어서 한양 길을 떠난 것은 아닐 테고, 누군가가 가져갔단 말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학교를 뺑뺑 돌며, 교실의 쥐구멍까지 뒤지며, 혹은 우물의 두레박까지 끌어올리며, 가끔은 알지도 못하는 신께 기도까지 하며 찾아봤지만 책보는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아아, 내 책보, 내 도시락…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요. 저는 기어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수색작전은 그날뿐 아니라, 이튿날도 이어졌고, 그 다음날까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책보는 끝내 찾을 수 없었습니다. 훗날 세월이 흘러, 책보가 아픔보다는 추억이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저는 알 수 있었습니다. 나보다 더 배고픈 이가 있어 도시락을 가져간 것이라고. 나보다 더 공부하고픈 이가 있어 책을 가져간 것이라고.

책보에 얽힌 추억은 하루 종일 얘기해도 모자랄 만큼 많습니다. 6년 내내 아이들 곁을 지키는 게 책보였으니 얼마나 많은 사연이 쌓였겠습니까. 어쩌면 책보 안에는 책이나 도시락뿐 아니라 아이들의 꿈이 고스란히 싸여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책보를 붙들어 매고, 먼지 이는 신작로를 딸그락거리며 달리던 그 시절은 눈물까지도 꿈이었으니까요. 보자기라는 게 그렇잖아요. 서양에서 온 가방이 일정한 틀 안에만 물건을 담을 수 있다면, 우리의 보자기는 담을 수 있는 것의 형태에 따라 얼마든지 변신이 가능하거든요. 그러니 웃음인들 눈물인들 꿈인들 소망인들 담기지 않았겠습니까.

어쩌면, 조금 억지를 부리자면, 그 보자기에 담겨있던 것들이 그 시절 우리를 키워주었는지도 모르지요. 이제 책보를 볼 수는 없습니다. 보자기야 아직도 어머니의 장롱 속에 남아있지만 그 안에 책이 담긴 보자기, 책보가 사라진 것이지요. 혹시 박물관에는 있을까 찾아가 봐도, 책보 따위는 보관 대상이 아닌 것 같더라고요. 제가 과문한 건지도 모르겠고요.

지금도 깊은 산골, 어느 한적한 비포장도로를 지나노라면, 검정고무신을 신은 채 어깨에 책보를 매고 뛰어가는 어릴 적 제 모습을 봅니다. 주린 배에 밥 대신 꿈을 채워 넣던 그 아이가 저만치서 달려갑니다. 제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고이고요.

사강  sagang@mediaso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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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강 / 여행작가 sagang@mediaso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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