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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것들 11] 비닐우산

굳이 이유를 따지자면 빗소리 때문이었다고 할 수밖에. 평소엔 오줌보가 터져나갈 지경이나 돼야 이불을 빠져나오던 아이었다. 그런데 날이 밝지도 않았고 오줌이 마려운 기색이 아닌데도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마루로 나섰다.

식구들은 모두 깊이 잠들어 있다. 바깥세상은 밤새 비가 점령하고 있었다. 부지런한 새벽빛이 마당을 쓸고 다닐 시간이지만, 어둠은 여전히 고샅 언저리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굵은 빗방울이 마당가 오동나무 잎을 투두둑~ 투두둑~ 때렸다. 빗물이 제멋대로 유영하는 마당을 내려다보던 아이가 기쁨에 겨운 표정으로 토방으로 내려섰다. 그러더니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더듬더듬 마루 밑을 더듬었다.

조금 있자 파란 비닐우산 하나가 아이 손에 끌려나왔다. 며칠 전, 그러니까 지난 번 비가 오고난 뒤 식구들이 우산의 존재를 잊을만했을 때 감춰둔 것이었다. 아이가 우산을 다시 찔러 넣더니 마루를 지나 방으로 들어갔다. 식구들은 여전히 달콤한 아침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가 살금살금 윗목으로 올라가 책보를 손에 들었다. 어젯밤에 하늘이 밤간산 머리까지 내려앉은 것을 보고 미리 싸둔 터였다. 학교에 가기에는 턱없이 일렀지만, 시간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고양이걸음으로 마루를 지나 토방으로 내려선 아이가 고무신을 급히 꿰고 우산을 꺼내더니 사립문 쪽으로 줄행랑쳤다

아이는 바깥마당을 벗어나고도 달음질을 멈추지 않았다. 집이 저만치 멀어진 뒤에야 서서 숨을 헐떡거리며 우산을 폈다. 이미 옷은 꽤 젖어버린 뒤였지만 아이의 얼굴은 기쁨으로 빛났다. 얼마나 써보고 싶었던 우산이던가. 비닐우산을 처음 써본 건 두 달쯤 전이었다. 비 오는 날 읍내에 나갔던 아버지가 하나 사들고 온 게 계기였다. 시골 아이들은 비가 쏟아져도 대부분 우산을 쓰지 않았다. 쓸 줄 몰라서가 아니라 우산 자체가 귀하기 때문이었다.

부잣집들이야 쇠살에 검정 천을 씌운 튼튼한 우산을 갖고 있었고, 또 드물게 지우산(紙雨傘 기름먹인 종이를 댓살에 발라 만든 우산)이 있는 집도 있었지만 가난한 집에서는 구경조차 쉽지 않았다. 사실, 해가 뜨나 비가 오나 논밭에서 살다시피 하는 농투성이들이 우산을 쓸 일이란 별로 없었다. 고이 간직했다가 외출 할 때나 꺼내 쓰고는 했다.

비 오는 날 들에 나갈 때는 도롱이(짚띠 따위로 엮어 허리나 어깨에 걸쳐 두르는 비옷) 또는 우비를 쓰거나, 그도 여의치 않으면 비료부대에 구멍을 뚫어 쓰면 그만이었다. 산성비니 뭐니 하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 비를 생짜로 다 맞는다고 탈 날 일도 없었다. 아이들도 비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빗속을 뛰어다니는 게 다반사였고 비료부대를 머리에 쓰면 그나마 호사였다. 하굣길에 갑자기 비가 내리면 아무 밭에나 뛰어 들어가 토란잎 하나씩 따서 쓰면 최고의 우산이었다.

비가 오면 재미있는 놀이거리가 생기기도 했다. 도랑에 호박잎대롱을 걸어놓고 물레방아놀이를 하거나, 일부러 물 고인 곳을 골라 다니며 철벅철벅 장난을 치기도 했다. 또 물이 고였다 빠진 냇가 웅덩이에서는 붕어나 송사리를 쏠쏠하게 건져낼 수 있었다. 그렇게 비를 즐겼다고, 아이들이 우산 쓰는 걸 싫어했다는 건 아니다. 아니, 늘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라는 노래는 시골학교에서도 똑같이 가르쳤으며, 그 노래를 배울 때면 우산을 써보고 싶다는 열망에 시달리고는 했다. 하지만 파란우산이나 검정우산은커녕 찢어진 우산조차 귀한 환경이니 늘 희망사항으로 끝났다. 아이 역시 비가 오면 늘 우산이 갖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우산이 생겼어도 온전한 아이 몫이 될 수는 없었다. 두어 번 써보긴 했지만, 형과 같이 써야했고 그때마다 우산대를 잡는 건 형이었다. 쓰지 않느니 만도 못한 것이 우산 하나를 같이 쓰는 것이었다. 함께 쓰는 게 싫기는 형도 마찬가지여서, 늘 걸음을 빨리하거나 자기 쪽으로 우산을 기울이고 걸었다.

그러잖아도 비를 가리기에는 부족한 비닐우산을 반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니,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온몸이 시궁창서 나온 생쥐 꼴이었다. 게다가 괜히 빠른 걸음 따라가느라 용을 쓰는 바람에 배만 꺼지고는 했다.

우산을 쓴 아이의 걸음이 구름 위라도 걷는 것처럼 경쾌했다. 파란 비닐이 춤이라도 추듯 들썩거렸다. 날은 밝았지만, 워낙 이른 시간이라 학교 가는 아이들은 없었다. 우산 쓴 걸 자랑할 수 없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그렇다고 자랑할 상대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었다. 논에 물꼬를 보러 나온 순구 아버지가, 웬 넋 빠진 녀석이 벌써 학교에 가나싶어 목을 길게 뽑아 쳐다본 것이었다. 아이는 그나마도 고마워서 우산을 든 채 팽그르르 한 바퀴 돌았다. 순구 아버지의 혀 차는 소리가 빗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신이 났다. 겅중 걸음으로 냇둑을 지나 징검다리를 건너고 신작로로 접어들었다.

좋은 일마다 꼭 따라다닌다는 악마는 당산나무(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셔 제사를 지내 주는 나무) 앞을 지날 즈음에 나타났다. 어딘가 숨어있던 돌개바람이 우우 소리치며 달려들더니 비닐우산을 홀라당 뒤집어놓고 말았다. 아이는 처음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우산을 놓치지 않으려고 버둥거렸을 뿐이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산은 형편없는 꼴로 널브러져 있었다. 대살과 분리된 비닐은 제멋대로 펄럭거렸다. 우산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려고 주저앉아 버둥거려봤지만 이미 모든 건 끝난 다음이었다. 만질수록 분해되는 속도만 빨라질 뿐이었다. 장대같은 비가 쏟아지는 들판에,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닐우산은 말 그대로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 만든 살에 비닐을 씌운 우산을 말한다. 우산대 역시 대나무로 만들었다.(훗날 플라스틱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댓살은 물론이고 비닐 자체가 워낙 얇고 약해서 바람이 조금 세게 불어도 뒤집어지거나 살이 부러졌다. 빗줄기가 조금만 굵어지면 줄줄 새기도 했다. 그래서 비닐우산은 ‘1회용’의 대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나마도 귀하던 시절이 있었다. 매번 우산을 살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비닐우산이라도 아끼고 아껴서 여러 번 써야했다.

도시라고 다르지 않았다. 비 오는 아침이면 골목마다 비닐우산의 물결이 장관을 이뤘다. 구멍가게나 버스정류장 간이매점의 우산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오후에 갑자기 비가 쏟아지면 학교 앞이나 버스정류장에는 우산을 든 엄마들이 줄을 서서 아이들을 기다렸다. 그럴 형편이 안 되는 집 아이들은 부러운 눈길을 애써 발밑으로 구겨 넣으며 책가방을 머리에 이고 무작정 달렸다. 퇴근 무렵에 갑자기 비가 쏟아지면 비닐우산 뭉치를 옆에 끼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우산장수 소년들의 목소리에 신명이 붙었다.

우산이요~ 우산 사세요~~ 대개는 비닐우산을 하나 사서 쓰기 마련이지만, 그나마 아끼려고 신문지 한 장 머리에 쓰고 버스정류장까지 냅다 달리는 샐러리맨들의 경주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사연과 애환도 많았던 비닐우산의 시대는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비닐우산이 등장한 것은 1960년대였다. 하지만 1970년대 말 스위치만 누르면 펴지는 2단 자동우산이 나오면서 뒷골목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끄떡하면 뒤집어지고 살이 부러지는 태생적 문제 탓도 있었지만, 대부분 수작업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우산을 대적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퇴락의 길을 걷다가 1990년대 중반부터 중국산 싸구려 우산이 들어오면서 그나마 헐떡이던 명줄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젠 비닐우산에 묻힌 애환이 아득한 옛날 일로 느껴질 정도로 우산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다. 금세 잃어버리고 다시 사도 부담이 없을 정도라, 집에 있는 우산이 가족 숫자를 웃돌게 되었다.

우산이 문제가 아니다. 요즘에는 비가 조금이라도 내리면 산성비니 뭐니 해서, 아이들을 차에 태워서 학교에 보낸다. 가끔 생각해본다. 자가용이나 튼튼한 우산 속에서 비를 독극물쯤으로 알고 자라나는 아이들, 비 오는 날 친구들과 물장난 한번 쳐보지 못한 아이들…. 이 아이들은 훗날 무엇을 추억 삼아 살아갈까. 파란 비닐우산 위로 후두두둑 떨어지던 빗물, 가끔 그 소리의 독특한 음색과 장단이 뼛속 어디엔가 각인되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난했던 날의 슬픈 기억조차 그리워질 때가 있는 걸 보면….

사강  sagang@mediaso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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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강 / 여행작가 sagang@mediaso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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